박소유 시인 / 원탁회의
동그란 결론을 내자는 뜻이지요 한 명이라도 딴소리하면 옆으로 새는 혓바닥처럼 일그러지는 둥근 탁자 맞은편에 앉은 저 사람은 사랑이라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 같군요 중요한 건 정색을 하고 앉은 사람들 틈에 있으면 나는 왜 이렇게 시시껄렁해질까요 터져 나오는 웃음처럼 동그라미를 치고 밑줄을 긋고 리듬도 없이 시간은 흘러가네요 이토록 많은 말이 필요한 건지 입을 다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한 마디 하라고 재촉하는 사람들 입을 맞추자는 것이지요 오! 오! 동그랗게 오므린 입술만 내밀면 비로소 하나가 되어 있겠네요 우리는 금방 헤어질 사람들인데 금방 다시 만날 것처럼 왜 이렇게 다정해지려고 하는 걸까요
박소유 시인 / 달 가까이 - 아들에게
너를 옥탑방에 자취시키고 나는 달과 가까워졌어 옥상 꽃밭에는 잡초만 무성하고 걷어가지 않은 네 이웃의 빨래가 밤새 품을 만들어줄 때 너는 그곳에서 술을 배우고 담배를 배우고 여자를 알았으니 세상이 베푸는 호의는 마냥 흘러드는 달빛 같았을 거야
달빛이 먼저 왔으니 네 마음 늘 환했을 것이나 그믐을 견디기에는 저 달도 밤하늘이 막막하기는 마찬가지 아니었겠니 최대한 멀리 공을 던지려는 럭비선수처럼 전속력으로 달려가야겠지 최대한 내게서 멀어질 수 있도록
흘러가는 것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 있는 동안 서로 방향은 다르겠지만 저 달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너는 모를 거야 모든 게 처음이었을 너에게 모든 것을 보여주려고 너를 중심으로 달이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로 가고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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