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박소유 시인 / 원탁회의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3. 12.

박소유 시인 / 원탁회의

 

 

동그란 결론을 내자는 뜻이지요

한 명이라도 딴소리하면 옆으로 새는 혓바닥처럼

일그러지는 둥근 탁자

맞은편에 앉은 저 사람은

사랑이라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 같군요

중요한 건

정색을 하고 앉은 사람들 틈에 있으면

나는 왜 이렇게 시시껄렁해질까요

터져 나오는 웃음처럼

동그라미를 치고

밑줄을 긋고

리듬도 없이 시간은 흘러가네요

이토록 많은 말이 필요한 건지

입을 다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한 마디 하라고

재촉하는 사람들

입을 맞추자는 것이지요

오! 오! 동그랗게 오므린 입술만 내밀면

비로소 하나가 되어 있겠네요 우리는 금방 헤어질 사람들인데

금방 다시 만날 것처럼

왜 이렇게 다정해지려고 하는 걸까요

 

 


 

 

박소유 시인 / 달 가까이

- 아들에게

 

 

너를 옥탑방에 자취시키고 나는 달과 가까워졌어

옥상 꽃밭에는 잡초만 무성하고

걷어가지 않은 네 이웃의 빨래가 밤새 품을 만들어줄 때 너는 그곳에서

술을 배우고 담배를 배우고 여자를 알았으니

세상이 베푸는 호의는 마냥 흘러드는 달빛 같았을 거야

 

달빛이 먼저 왔으니 네 마음 늘 환했을 것이나

그믐을 견디기에는

저 달도 밤하늘이 막막하기는 마찬가지 아니었겠니

최대한 멀리 공을 던지려는 럭비선수처럼

전속력으로 달려가야겠지

최대한 내게서 멀어질 수 있도록

 

흘러가는 것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 있는 동안

서로 방향은 다르겠지만

저 달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너는 모를 거야

모든 게 처음이었을 너에게 모든 것을 보여주려고

너를 중심으로

달이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로 가고 있는 거야

 

 


 

박소유 시인

1961년 서울에서 출생. 대구가톨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졸업. 198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되어 등단. 1990년 《현대시학》 당선. 시집 <사랑 모르는 사람처럼> <어두워서 좋은 지금> <너에게 모든 것을 보여주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