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처 시인 / 불면
거대한 불가사리 같은 바단지린사막이 스멀스멀 내 이부자리로 기어오른다 쩍쩍 갈라지는 등을 긁는다 타박타박 자판 치듯 낙타 떼가 옆구리를 횡단해가고 얼룩얼룩한 잠 속으로 스며드는 냄새
아주 먼 곳에서 날아오는 듯한 담배 연기, 코끝에 앉아 날개를 접었다 폈다, 누란 갱지들을 허물처럼 벗어놓고 사막은 밤새 내 등 위에서 뒤척거린다 모래 폭풍이 일고 누각이 파묻히고
서영처,『말뚝에 묶인 피아노』문학과 지성사, 2015, 13쪽
서영처 시인 / THE #
THE #은 반음 높은 지대에 자리 잡는다 THE #은 불 켜진 음표와 불 꺼진 쉼표로 이루어진 불규칙한 악보, THE #은 높은음자리표를 달고 차별화된 소리로 노래한다 주민들이 바뀌고 아이들이 바뀌고 쿵쾅거리는 위층의 강약과 단말마의 외침이 들려오지만 THE #의 주제는 명랑과 사랑, THE #은 자동차들이 꿀벌처럼 붕붕거리며 돌아오는 밤을 노래한다 반음 낮은 지대엔 어두컴컴하고 우울한 아파트들, 전원을 올리면 THE #, 벌집처럼 노란 꿀물이 흘러내린다 꿀물은 행복의 음악적 형태, 전 단지에 집중 조명을 하고 전단지를 돌려 THE #은 올림표가 잔뜩 붙은 프리미엄 아파트임을 선언한다.
『말뚝에 묶인 피아노』 ,서영처, 문학과 지성사, 2015년, 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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