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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서영처 시인 / 불면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3. 12.

서영처 시인 / 불면

 

 

거대한 불가사리 같은 바단지린사막이 스멀스멀 내 이부자리로 기어오른다 쩍쩍 갈라지는 등을 긁는다 타박타박 자판 치듯 낙타 떼가 옆구리를 횡단해가고 얼룩얼룩한 잠 속으로 스며드는 냄새

 

아주 먼 곳에서 날아오는 듯한 담배 연기, 코끝에 앉아 날개를 접었다 폈다, 누란 갱지들을 허물처럼 벗어놓고 사막은 밤새 내 등 위에서 뒤척거린다 모래 폭풍이 일고 누각이 파묻히고

 

서영처,『말뚝에 묶인 피아노』문학과 지성사, 2015, 13쪽

 

 


 

 

서영처 시인 / THE #

 

 

 THE #은 반음 높은 지대에 자리 잡는다 THE #은 불 켜진 음표와 불 꺼진 쉼표로 이루어진 불규칙한 악보, THE #은 높은음자리표를 달고 차별화된 소리로 노래한다 주민들이 바뀌고 아이들이 바뀌고 쿵쾅거리는 위층의 강약과 단말마의 외침이 들려오지만 THE #의 주제는 명랑과 사랑, THE #은 자동차들이 꿀벌처럼 붕붕거리며 돌아오는 밤을 노래한다 반음 낮은 지대엔 어두컴컴하고 우울한 아파트들, 전원을 올리면 THE #, 벌집처럼 노란 꿀물이 흘러내린다 꿀물은 행복의 음악적 형태, 전 단지에 집중 조명을 하고 전단지를 돌려 THE #은 올림표가 잔뜩 붙은 프리미엄 아파트임을 선언한다.

 

말뚝에 묶인 피아노』 ,서영처, 문학과 지성사, 2015년, 59쪽

 

 


 

서영처 시인

1964년 경북 영천에서 출생. 경북대학교 음악과에서 바이올린 전공. 영남대학교 국문학 박사과정 졸업. 2003년 계간 《문학 . 판》에 〈돌멩이에 날개가 달려있다〉 외 5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피아노 악어』(열림원, 2006), 『말뚝에 묶인 피아노』(문학과지성사, 2015)와 산문집 『지금은 클래식을 들을 시간』, 『노래의 시대』, 『예배당 순례』가 있음.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역임. 현재 계명대학교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