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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소향 시인 / 달콤한 커피향의 유혹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3. 12.

박소향 시인 / 달콤한 커피향의 유혹

 

 

커피는 추억이다.

빛바랜 흑백 사진이다.

커피향이 짙게 번지는 어수선한 퇴근길가에서 누군가 아는 척을 한다.

너 혹시 누구 아니니? 가만히 보니 낯익은 모습의 얼굴이다. 여고 졸업하고 거의 이십여 년 만에 친구를 우연히 길에서 만난 것이다.

주변에 그렇게 흔한 커피숍도 많았건만, 우리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반갑고 기쁜 그 만남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돌아가 웃고 떠들고 시간 반이 넘도록 이야기하던 우리는 무엇이 또 그리 바쁜지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그녀가 타고 떠난 버스 꽁무니 뒤로 뽀얗게 일어서는 현실의 시간-.

애써 밀어내는 퇴근길, 자꾸만 낭랑 십팔 세의 얼굴이 가슴 속으로 파고들어 아직 이른 낙엽을 집어 든다.

낙엽에서도 묻어나는 지난날의 추억은 달콤한 커피향을 유혹한다.

가을밤은 깊어만 가는데…….

 

 


 

 

박소향 시인 / 블랙커피

 

 

아무 것도 섞지 말기

아무 것도 넣지 말기

초승달이 걸러낸 저녁처럼

외로울지라도

버거운 하루를 밟고 가는 내 그림자가 안쓰러울지라도

 

달콤한 향기에 넘어가지 않기

고소한 유혹에 무너지지 않기

길들여진 입맛에 현혹되지 않기

 

하지만 비가 내리는 날은 안 되지

바다가 생각나는 울적한 날은 안 되지

약속도 없는 마지막 주말

고독이 깊어져 그리운 것들이 몰려올 때는 더욱 안 되지

 

깔끔하고 싶지만

도도하고 싶지만

나이테가 늘어갈수록

아무 것도 아닌 것에 약해지는

그저 블랙만으로는 양이 안 차는

허전한 새벽처럼 유혹이 시작되지

 

아무 것도 섞지 않은

아무 것도 넣지 않은

한 가지 색으로만 사는 일

쉽지만 쉽지 않은

그래서

커피를 마시며 하는 말은 믿지 말라나.

 

 


 

박소향 시인

양주 출생. 2003년 월간 시사문단에서 시 부문 우수상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계간시와수상문학 사무국장. 종로문인협회 회원. 과천문인협회 회원. 선진문학작가협회 자문위원. 선진문학 신인문학상 심사위원. 2007년 휴먼메신저 휴머니즘 우수상 표창. 2017년 시와수상문학 문학상. 2002년 시집 (바보가되어도 좋았습니다 그대를 사랑할 때만큼은). 2007년 시집 분(粉). 시향동인지 '시의향기'. 독도사화집 '독도에서 온 편지' 外 다수 동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