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채원 시인 / 간을 보다
신맛이 강할 땐 얼차려를 시키고 비린내가 날 땐 식초를 한 스푼 넣고
누가 애탕 맛을 탓하랴
덜 익은 사랑도 곯아버린 사랑도 손맛에 달렸다
금슬이 너무 좋은 옆집 부부에겐 식초를 찔끔 쳐야겠다. 낮이고 밤이고 개 닭 보듯 하는 아랫집 걔들에겐 핫쵸코가 필요해. 시럽을 듬뿍 뿌린 신에 대한 맹신은 당뇨를 불러올지도 몰라. 피검사 결과 신은 죽었다고 외치려나. 구경꾼들에겐 식초와 설탕을 번갈아 쳐도 뒤끝은 씁쓸하지. 까칠한 입맛을 어찌 다스릴까. 거품만 부글거리다 가라앉고 나면 처음과 다름없이 쓸쓸한 모래알들만 입안에서 쯧쯧거리고
무명가수들이 순회공연하는 무대 위에서 백댄서들은 다친 발목이 아물 만하면 춤을 추고 아물 만하면 또 춤을 춘다, 너무 익어 내일이 망가질 때까지
불멸의 피클은 존재하지 않아 달아나는 시간을 붙잡아 당절임을 하고 초절임을 해도 유리병 속에 밀봉된 허무는 나날이 풍만해지고
그래, 이만하면 이번 생은 충분히 슬펐어 세상 여기저기 찔러봐도 눈물이 더 짜질 건 없어 그럭저럭 살 만해 견딜 만큼 간이 맞아
계간 『시와 문화』 2021년 가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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