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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유현서 시인 / 견딤의 방식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3. 13.

유현서 시인 / 견딤의 방식

 

 

활어횟집 수족관에 빼곡한 물고기들

죽을 차례만 기다린다

 

뺨들을 비비며

비켜나간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저 견딤

 

죽음과 견딤의 값으로

방부제가 날까 항생제가 날까

뜰채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나의 공복은

또 어떤 살해를 꿈꾸는지

내 몸 곳곳에서 비늘로 돋는 허기

 

나는 누구의 뺨을 만져봐야 하는가

 

- 『유심』2011년 7 ~ 8월호에서

 

 


 

 

유현서 시인 / 소금창고에서 소금찾기

 

 

녹이 슨 모자를 깊게 눌러 쓰고 몇 개의 기둥에 늑골을 기대고 있다

기우뚱, 아슬아슬한 각도다

 

폭삭 주저앉아 버릴까

대자大字로 늘어진 잠이 흔치않은 호접몽을 꺼낸다

 

밀물과 썰물의 몸 섞는 소리

등 굽은 염부의 고무래질하는 모습으로 들락거린다

 

대여섯 개의 지팡이로 펼쳐진 드라마가

헐거운 동공으로 노려본다

 

바다를 훔치고 싶었다

오가지도 못하게 붙들어 앉히고 오래도록 바라만 보았다

그 여자의 눈물이 마르고 마를 때까지

무더운 날들 속으로 나의 요구만 더해갔으나

흰 뼈만 남은 그녀와 함께 머리칼이 다 세어 버렸다

 

노나라의 왕은 바닷새의 사랑으로 사랑하지 않고

왕의 사랑법으로만 사랑을 했나

 

비로소 집다운 집을 짓나보다

검불을 물고 들락거리는 바닷새들 사이로

다시 노을이 건너간다

그 여자는 끝내 나를 찾지 않는다

그 여자의 피가 내 몸속에서 썩지도 않고 숨어 있다

 

 


 

유현서 시인

1964년 강원도 원주에서 출생. 2009 여성조선 주최 "시문학상공모전" 우수상 수상. 2010년 계간 《애지》로 등단. 시집 <당신을 다루는 법>. 2008년 제1회 여성조선 시문학상 및 전국재능시낭송대회 은상 수상. KBS 성우아카데미 심화과정을 이수, 현재 「함께하는시인들 시문화연구회」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