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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윤이산 시인 / 아무렴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3. 13.

윤이산 시인 / 아무렴

 

 

봄이 온다

'아무렴'

꽃이 진다

'아무렴'

 

외할머니는 사시사철 바다 향해

의자를 내놓고 앉아 계셨지

온종일 '아무렴' ‘아무렴’ 중얼거리며

바다를 바라보고 계셨지

 

신열이 펄펄 끓던 밤에도

아무 일 없다는 듯 내 이마를 짚으며

'아무렴' '아무렴'만 하셨지

 

몸도 마음도 너무 아파 운신조차 어려울 때

누군가 차려 내오는 따뜻한 미음처럼

당신이 건네준

'아무렴'

 

이젠 내게도

아무렇지도 않게 봄이 오고

아무렇지도 않게 꽃이 지지

 

'아무렴'

 

나도 바다를 향해

의자 하나 내놓았거든

 

물고기 잡으러 간 외삼촌이

자신이 던진 그물에 걸려 돌아온 바다

 

 


 

 

윤이산 시인 / 노을

 

 

누가 펄펄 끓는 하루를 들고 가다 그만, 양동이를 엎질러

버린 게 틀림없다. 이녁까지 뜨끈하다.

 

 


 

 

윤이산 시인 / 간보다

 

 

간 본다

내 간은 숨겨놓고

상대의 간을 꺼내려

간(間)을 노린다

여의치 않으면

내 간을 먼저 꺼내놓고

흥정을 터 보기도 한다

간이 배 밖에 나온 간 큰 놈들은

상대의 복장에 바로 손을 쑥 집어넣어

간을 꺼내기도 하지만 잘못 건드렸다가

간 떨어질 뻔한 위기도 맞는다

취향에 따라 달라지는 간 맞추기

서로 간보다 입맛 맞으면

친구 간이 되기도 하고

별 볼 일 없을 때는

간에 붙으려다가

쓸개에 가 붙기도 한다

간 보다 피로해진 간이

랑게르한스섬처럼 떠 있다

 

-시집 『물소리를 쬐다』 (실천문학, 2020년 1월)

 

 


 

 

윤이산 시인

경북 경주에서 출생. 2009년 《영주일보》신춘문예에 〈선물〉이 당선되어 등단. 경주 문예대 수료. 경주대 사회교육원 문창반 수료. '시in'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