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레 시인 / 동물원에서 텔레비전 보기 우리(We)와 우리(Cage) 사이
밖은 우리의 함정이었다
울타리를 친다는 건 거부의 표시일까
아무도 침범하지 않고 경계를 무너뜨리지 않는 게 관계망이라면 문 안쪽은 안전하다는 거겠지, 포식자가 걸어온 길엔 왜 자꾸 문이 사라지는 거니! 서로를 겪는 방식이 달라 곳곳에 우리가 필요했지 우리는,
우리가 있어 슬프다가도 우리가 있어서 안전하다는 생각
아이들과 동물원에 온 인솔교사는 호랑이보고 '귀엽다'를 난발하고 발톱을 감춘 호랑이가 원하는 게 뭔지, 이들의 뇌 속 세계
아무것도 모르는 해는 척, 척, 척, 돌아가고
어제는 아버지랑 실랑이하다가 휴지통이 날아왔지 변화구를 던지듯 심각하게 노려보던 눈
누군가의 내일이 여기라면 사각이 좀 더 안전한 방법이길,
모서리는 깎이더라도 우리의 안전이 될 수 있다는 모순!
매일매일 갇힌 동물처럼 어느 것 하나 '함께'라 부를 수 없는 나의 우리를 동물원 가서 묻는다, 갇힌 슬픔이 튀어나와 나를 덮칠 것 같아도
벗어나지 못하는 건 나만이 아니라는 것 물려받은 유전자가 그렇다는 걸
동물은 왕국을 포기하고, 텔레비전을 보는 우리는 우리를 훌쩍 뛰어넘지 못하는데
밖은 여전히 우리를 뛰쳐나간 아이들의 뒤집기가 한창이다
우리가 모르는 우리가 가끔 내 눈에만 보이지만 선뜻 먹이를 주지도 손을 내밀지도 않는
목숨을 건 네모 속 갇힌 최악의,
문이레 시인 / 오브제 - 종탑에 걸린 너
푸른 리넨 커튼이 드리워진 창으로 십자가가 보여
그 속에 네가 매달려 있다는 건, 아직 내 눈이 깨어있다는 것 휘파람새의 지저귐 들리는 건, 두 귀가 열려 있다는 거겠지
나의 종교를 대신할 너만 있다면 오늘의 우울을 날려 보낼 거야 지금은 너의 꽃잎이 피고 있는 계절
빈 의자의 시간은 자꾸만 멈추질 않아 다가가 손 내밀고 싶지만 벚꽃은 더 이상 찬란하지 못해 울면서 피어나지
넌 사방 못질한 오동나무 붉은 관처럼 누워 있지만 너의 종교와 나의 문학이 세상의 끝이 아니길 기도해
단 한 번도 입 맞춘 적 없지만 그건 나의 자오선과 너의 동쪽이 조금씩 움직이기 때문일 거야
지구를 조금씩 돌아 그 중심을 볼 때 입술엔 너의 종교를 묻히길 바라
우린 우연으로 만났지만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때, 꽃잎은 먹어 버리자
백 년 만에 돌아온 계절이 날 위해 웃어줄 때까지 봉오리마다 자붓자붓 슬픔을 꽃 피울래
너의 종교를 기다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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