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차애 시인 / 생각하는 나무
생각하는 정원이라는 제주의 식물원에서 흑느릅나무 분재 한그루가 이사하는 것을 보았다. 원예사는 그의 뿌리를 본 흙과 같이 둥글게 감싸 새 자리로 옮겨주면서 무성한 가지와 탐스러운 여름 잎을 무참하게 잘라냈다. 둥글고 부드럽던 몸태도 정감 깊던 그늘도 순식간에 잃고 가지 두엇과 둥치만 남은, 나무의 새 삶이 난망해보였다. 아픈 엄마에게서 청상의 백모에게로, 마당 넓은 시골집에서 다시 산동네 슬레이트집 다락방으로, 옮기고 또 옮겨졌던 내 유년의 잔뿌리가 시름시름 아파왔다. 새 생각과 결심이 다시 뿌리내릴 때 까지 잎도 가지도 아낌없이 잘라내야 살 수 있단다. 제대로 가혹해지지 않으면 잎마름병이 온 몸으로 번져 생명까지 잃는단다. 관계도 시(詩)도 화두인 당신도 잘라내야만 또 한 폭 키울 수 있는 것이다. 멈칫멈칫 돌아서는 내 손에 큰 전정가위하나 들여져 있다.
안차애 시인 / 나는 다혈질이다
핏줄기가 내 몸 속을 200km의 속력으로 달려낸다는 것을 알고부터 내 대책 없는 다혈질을 이해하게 되었다. 고개 끄떡여 인정하고 구박하지 않게 되었다. 우심방 지나 좌심실 거쳐 달려 나간 붉은피톨 흰피톨 혈소판들이 아우토반에서 시험 질주하는 최신형 아우디자동차보다 빠른 전력질주로 달리는 것이다. 하루에 내 몸 속을 지구둘레의 두 바퀴 반 거리만큼 쉼 없이 내달리는 피의 고단함을 알고부터 나의 울컥 성질도 다발성 신경질도 너를 향한 대책 없는 펄떡거림도 먹어주게 되었다. 냉각수도 없이 달리고 또 달려낸 핏줄기의 안간힘인 것이다. 나는 이제 세상을 향한 너를 향한 그 뜨거운 폭주를 사랑하게 되었다. 더 열혈이 되도록 맹렬이 되도록 쉼 없이 펌프질, 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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