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정 시인 / 볼우물
젓갈을 좋아했다는 공자 잘만 먹다 아끼던 제자가 젓갈이 되어 돌아왔을 때 비로소 젓가락을 내던졌다는 스승 너무 익숙한 맛이라 그랬을까 아니면 맛나 죽을까봐
구두가 쌓여있는 유태인 전시실처럼 맛으로 분류된 별실이라면 나는 어떤 맛으로 흩어질까
왜 간만 빼먹니 가슴 치는 네 맛이라 먹다 보면 네가 될 것 같은 맛이라 피 맛 푸딩을 녹여먹던 그 애는 내가 됐을까
쥐를 묻은 자리에 해바라기가 피었대 양볼 가득 네가 피었대
꽃대를 올려다보며 웃는 그 애
물고기는 영혼까지 비리대 양상추는? 영혼까지 아사삭
개 한 마릴 달아놓고 입맛을 다시던 이웃들처럼
사랑을 받던 심장은 더 쫄깃할까
아마도,
내가 먹은 너처럼
임현정 시인 / 각설탕
어느 위대한 과학자가 실험용 원숭이에게 자신의 뇌를 이식했다는데 연구실 간이침대 위에서 발견되었지. 욕망의 해체에 대한 보고서 말이야.
한때 몽키 갱스터가 유행했던 적도 있지만 달궈진 총구를 들이대는 무서운 협박도 샛노란 바나나 한 송이면 끝장나고 말았어. 혀의 본능에 대한 연구는 아직 미개척 분야였거든.
신문지 밖으로 빠져나온 꼬리가 밤의 공원에서 목격되기도 했어. 아파트 경비원은 그와 안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민의 안녕을 우선으로 여겼지. 욕망과 반비례하는 것들의 목록은 도표4에 나타나있어.
위대한 과학자의 뇌는 아직까지 위대했지만 그는 유령처럼 후미진 곳을 떠다녔어. 지문 없는 것들의 행동양식에 관한 공식도 그렇게 탄생했지.
날렵함과 명석함이 무기였던 그가 지금은 놀라운 묘기를 익힌다는 소문. 외발자전거를 타고 모형화산을 만들거나 무쇠나팔을 불면서 방사선 폭죽을 펑펑 터트린다는데.
서커스 단장은 아주 작은 연금으로 그를 고용했어.
각설탕처럼 하얀 정육면체의 악몽과 매달 지급되는 사료 두 봉지 그리고 주말에 제공되는 암컷 원숭이 한 마리.
어쨌거나 그는 위대한 뇌를 가진 원숭이였으므로.
임현정 시인 / 괘종시계가 울리는 밤
가스검침원이 벽에 기대있는 걸 발견했다지. 오래된 얼룩처럼 번져있었대.
산산이 부서진 채 전봇대 옆에 넘어져 있는 걸 본 적 있어 마루에 고여 있던 묵직한 그림자 신문지를 덮고 눕는 것도 흔한 일이야 껌 자국으로 지저분한 벤치는 벌써 만원인걸.
저기, 고장 난 괘종시계를 손수레에 실고 허리 굽은 괘종시계가 간다.
갈 곳 없는 시계들이 모여 잿빛연기를 뿜어대는 공원시계탑도 언젠간 스톱이야.
간밤엔 우울증 걸린 시계바늘이 꼭짓점에 매달려 마지막으로 댕댕 거린 날이지.
노란 스티커를 부적처럼 이마에 붙이고 숨이 탁 멎은 스댕부랄도 있는걸 뭐.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차애 시인 / 생각하는 나무 외 1편 (0) | 2022.03.13 |
---|---|
전형철 시인 / 해삼위 외 3편 (0) | 2022.03.13 |
이승훈 시인 / 위독 외 2편 (0) | 2022.03.13 |
이성부 시인 / 노고단에 여시비 내리니 외 1편 (0) | 2022.03.13 |
이기인 시인 / 밥풀 외 4편 (0) | 2022.0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