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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정미 시인 / 레몬

by 파스칼바이런 2022. 3. 14.

김정미 시인 / 레몬

 

 

눈썹을 찡그리며 너는 물었지

시든 오늘에도 내일이 피어나는 거냐고

소파 위에 떨어진 생각 부스러기를

탁자에 하나씩 올려놓다가

무럭무럭 자란 신맛이 절정이 될 거라는 답을

아직 네게 보내지 못했어

 

참 이상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눈물 나게 피어나던

정성의 순간들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

여름이 익어가는 계절 어디쯤,

우물쭈물하던 무렵이 있는 걸까

 

해답 같은 건 붙이지 못할 거란 말만 남기고

여전히 다짐만 익어가고 있어

 

참 이상해

애써 수확하지 않아도 한번쯤 증폭하는 레몬의 노란 타이밍

그 옐로우의 세계가 따뜻해지는,

 

군데군데 오늘에 옮겨 붙은 간절함은

이대로 기억 안쪽까지 짓무르도록 놓아두어도 좋겠어

오늘이 시고 떫어질 때마다

유독 멈추지 않고 계속 걷고 싶어질 테니까

 

서로 노랑을 나눠가진 후

흘러나오는 어떤 계절 앞에서도 더 깊어지지 않기를

노랑의 세계란

자꾸 넘어져도 일어나 매일을 산책하고 싶어지는

여전히 오늘이 오늘에게 묻는

어느 노란 가을밤이었다

 

계간 『문학과 창작』 20121 년 가을호 발표

 

 


 

김정미 시인

1968년 강원도 춘천에서 출생. 강원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 석사 수료. 2015년 계간 《시와 소금》으로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오베르 밀밭의 귀』와 산문집 『비빔밥과 모차르트』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