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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장옥관 시인 / 나비 키스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3. 14.

장옥관 시인 / 나비 키스

 

 

물이 빚어낸 꽃이 나비라면

저 입술, 날개 달고 얼굴에서 날아오른다.

눈꺼풀이 닫히고 열리듯

네게로 건너가는 이 미묘한 떨림을

너는 아느냐

접혔다 펼쳤다 낮밤이 피고 지는데

두 장의 꽃잎

잠시 머물렀다 떨어지는 찰라

아, 어, 오, 우 둥글게 빚는 공기의 파동

한 우주가 열리고 닫히는 그 순간

배추흰나비 분(粉)가루 같은

네 입김은 어디에 머물렀던가?

 

 


 

 

장옥관 시인 / 복사꽃

-장석주 시인의 시 <천리 불꽃>을 읽고

 

 

천리 불꽃`이 어디 있나, 영덕 오십천 천리 들판에 복사꽃이 한창이라니 연홍 다홍 분홍 꽃구름 지금 흐드러졌겠다 뼈마디에 탁탁 불꽃 튀는 이 봄날 `신체의 한 말단(末端)이 타`들어가는 `씹 생각`으로 `골똘해지는`사람도 있겠지만,

 

태어날 때부터 뒤틀리고 허우적대는 몸에 찾아드는 시끄러움 잠재우기 위해 하루에도 수천 번 절을 올렸다는 그 여자, 쉰 해가 되어도 꺼지지 않는 잉걸불은 또 무엇이랴

 

내일은 모처럼 날이 든다 하니 천리 불꽃 더 기막히겠다 불로 뜨거워진 몸은 불로 끄는 게 상책이니 떠올리기만 해도 골똘해지는 천리 불꽃에 우리 뺨을 데여도 좋으리

 

*작은 따음표 부분은 모두<천리 불꽃>의 시행.

 

 


 

 

장옥관 시인 / 비명

 

 

늦은 귀가

갑자기 어디서 찢어지는 비명이 들려왔다

 

헛디딘 발바닥을 뚫는 대못처럼 뾰족한 그 무엇이 순간, 등뼈를 훑고 지나갔다 나도 모르게 브레이크에 발이 얹혀졌다 4차선 도로가 일제히 출렁이고 거센 빗발이 솟구쳤다

 

희미한 전조등 불빛에 드러난 것은 허리가

반쯤 꺾인 누렁개 한 마리

반사적으로 일어난 놈은 단말마를 내지르며

인도 쪽으로 죽자고 내달았다

짝이 맞지 않는 네 다리를 허우적거렸다

아스팔트에 묻어 있는

비명을 깔아뭉개며 나는 더욱 세차게 차를 내몰았다

앞차가 가졌을 뭉클한 감각이

그대로 내 바퀴에 전해지는 것 같았다

 

화물칸에서 떨어진 나무토막이 아니다 그것은, 길바닥에 흔히 짓뭉개져 있는 도둑고양이의 머리통도 아니다 살아 있는 감각과 무엇보다 그 찢어지던 悲鳴!

 

나는 나의 컴컴한 지하실을 들여다보았다

검은 꽃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었다

 

 


 

 

장옥관 시인 / 혀

 

 

혀와 혀가 얽힌다

혀와 혀를 비집고 말들이 수줍게

삐져나온다

접시 위 한 점 두 점 혀가 사라질수록

말이 점점 뜨거워진다

말들이 휘발되어 공중에 돌아다닌다

장대비가 되어 쏟아진다

그렇게 많은 말들이 갇혀 있을 줄 몰랐던

혀가 놀라며 혀를 씹으며

솟구치는 말들을 애써 틀어막으며

그래도 기어코 나오려는

말을 비틀어 쏟아 낸다

혀가 가둬 놓았던 말들이 저수지에 갇혀 있던

말들이 치밀어 올라

방류된다 평생 되새김질만 하던 혀는

갇혀 있던 말들을 초원에

풀어 놓는다

 

 


 

 

장옥관 시인 / 낮달

 

 

재취 간 엄마 찾아간 철없는 딸처럼, 시누이 몰래 지전 쥐어주고 콧물 닦아주는 어미처럼

나와서는 안 되는 대낮에

물끄러미 떠 있다

 

떠올라서는 안 되는 얼굴이, 밝아서 보이지 않는 얼굴이, 있어도 없는 듯 지워져야 할

얼굴이 떠 있다

화장 지워진 채, 마스카라가 번진 채

여우비 그친 하늘에

성긴 눈썹처럼, 종일 달인 국솥에

삐죽이 솟은 흰 뼈처럼

 

 


 

장옥관 시인

1955년 경북 선산에서 출생. 계명대학교 국문학과와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 졸업. 198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황금 연못』, 『바퀴소리를 듣는다』, 『하늘 우물』 등이 있음. 2004년 제15회 김달진문학상과 2007 제3회 일연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