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윤 시인 / 복숭아밭에서
산국농장이 연분홍빛으로 달아올랐다 수백그루의 나무와 수만 마리의 나비들이 투명한 햇살에 정수리를 내놓고 겹겹으로 불타올랐다, 화르르 화르르 바람으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푸른 허공이 일시에 무너지고 하늘 언저리로 나비 떼들 빨려 들어간다 뼈만 남은 가지에 살이 붙고 통통하게 물이 오른 아이의 종아리처럼 연분홍이 흘러내리는 산기슭 검은 흙 둘레가 나풀나풀 나비로 달아오른다 벌써 나무들은, 단물 뚝뚝 흐르는 푸른 여름을 손끝 가득 매달고 섰다
-임동윤 시집 「편자의 시간」
임동윤 시인 / 밴댕이
썩어야 맛을 내는 작디작은 고기 속이 작아 창자 하나 버릴 것 없는, 통째로 삭힌 젓갈로 점심을 들다가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우리 가슴은 바다만 할까, 우주만 할까? 어쩌면 저 고기보다 속이 더 좁을지 몰라 그날 나는, 차마 젓갈에 손이 가지 못했다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한라 시인 / 문자 봉오리 외 1편 (0) | 2022.03.17 |
---|---|
강현미 시인 / 어리석은 나그네 외 1편 (0) | 2022.03.17 |
서정춘 시인 / 귀 외 3편 (0) | 2022.03.17 |
이시영 시인 / 시인이라는 직업 외 4편 (0) | 2022.03.16 |
이정록 시인 / 더딘 사랑 외 1편 (0) | 2022.03.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