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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시영 시인 / 시인이라는 직업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3. 16.

이시영 시인 / 시인이라는 직업

 

 

 금강산 시인대회 하러 가는 날, 고성 북측 입국심사대의 귀때기가 새파란 젊은 군관 동무가 서정춘 형을 세워놓고 물었다. "시인 말고 직업이 뭐여?" "놀고 있습니다." "여보시오, 놀고 있다니 말이 됩네까? 목수도 하고 노동도 하면서 시를 써야지 ……"키 작은 서정춘 형이 심사대 밑에서 바지를 몇번 추슬러올리다가 슬그머니 그만 두는 것을 바다가 옆에서 지켜보았다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창비) 중에서

 

 


 

 

이시영 시인 / 호야네 말

 

 

 이렇게 비 내리는 밤이면 호롱불 켜진 호야네 말집이 생각난다. 다가가 반지르르한 등을 쓰다듬으면 그 선량한 눈을 내리깔고 이따금씩 고개를 주억거리던 검은 말과 "애들아, 우리 호야네 말 좀 그만 만져라!"하며 흙벽으로 나 방문을 열고 막써래기 담뱃대를 댓돌 위에 탁탁 털던 턱수염이 좋던 호야네 아버지도 생각나다. 날이 밝으면 호야네 말은 그 아버지와 함께 장작 짐을 가득 싣고 시내로 가야 한다.

아스팔트 위에 바지런한 발굽 소리르 따각따각 찍으며.

 

 


 

 

이시영 시인 / 10월

 

 

심심했던지 재두루미가 후다닥 튀어 올라

푸른 하늘을 느릿느릿 헤엄쳐간다

그 옆의 콩꼬투리가 배시시 웃다가 그만

잘 여문 콩알을 우수수 쏟아놓는다

그 밑의 미꾸라지들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붓도랑에 하얀 배를 마구 내놓고 통통거린다

먼길을 가던 농부가 자기 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가만히 들여다본다

 

 


 

 

이시영 시인 / 함양

 

 

 경상남도 서부에 위치한 함양은 전라남도 구례의 북쪽이다 구례에서 함양을 가려면 오륙백 미터가 넘는 험준한 팔량치 고개나 육십치 고개를 넘어야 한다. 철도나 자동차 길이 없던 아득한 시절, 그러나 이곳에 지리산 곰들이 닦아놓은 혼도(婚道)가 있었다면 사람들이 믿을까. 구례 쪽 곰이 함양으로 넘어가 함양 곰이 되듯 내 어릴 적 함양에서 시집온 바지런한 함양댁들이 구례들엔 넘쳐났다 그리고 60년대 초반까지 구례중학교 운동장에선 구례-함양간 축구 정기전이 열렸다. 코스모스가 피고 오색기가 휘날리는 운동장을 달리는 곰의 아들들은 눈부셨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이 혼도는 끊기고 더 이상 정기전도 열리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함양은 함양, 구례는 구례. 두 곳을 이어주는 젊은 함양댁들도 들녘엔 없다. 다만 가을 어스름녘 구례 쪽에서 어슬렁어슬렁 산마루턱에 오른 늙은 곰이 볕들의 고향인 함양 쪽을 내려다보다 고개를 외로 꼬고 앉아 그 옛날을 모두 잊었다는 듯 무연한 명상에 잠길 뿐.

 

 


 

 

이시영 시인 / 14K

 

 

 어머님 돌아가셨을 때 보니 내가 끼워드린 14K 가락지를 가슴 위에 꼬옥 품고 누워 계셨습니다. 그 반지는 1972년 2월 바람 부는 졸업식장에서 내가 상으로 받은, 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어머님의 다 닳은 손가락에 끼워드린 것으로, 여동생 말에 의하면 어머님은 그 후로 그것을 단 하루도 손에서 놓아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이시영 시인

1949년 전남 구례에서 출생.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 고려대 대학원 국문과에서 수학. 19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만월』 『바람 속으로』 外에 다수 있음. 1996년 제8회 정지용문학상과 1998년 제11회 동서문학상을 수상. 창작과비평사 대표이사 부사장,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객원교수로 역임. 한국 작가회의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