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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강현미 시인 / 어리석은 나그네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3. 17.

강현미 시인 / 어리석은 나그네

 

 

나그네가 강가에 이르렀습니다.

마침 주인 없는 나룻배가 있어

강을 무사히 건널 수 있었습니다.

그 나룻배가 너무 고마워

나룻배를 등에 지고 여행길에 오른다면

사람들은 그를 어리석다 할 것입니다.

 

문득 우리를 돌아볼 때,

우리는 버려야 할 것들을

너무 많이 등에 지고 살아가는

나그네가 아닌가 합니다.

 

 


 

 

강현미 시인 / 도시의 본능

 

 

이 도시에는 건설의 유전자가 숨어있다

 

끊임없이 세를 넓히려는

짓고 또 짓고 올리고 또 올려

땅으로 하늘로 영역을 넓힌다

고층 건물은 낮은 건물의 머리를 내려다보고

초고층 건물은 고층 건물을 비웃듯이 내려본다

최첨단 스마트 인텔리전트 수식어를 장식처럼 달고

숨구멍처럼 좁은 공간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집념은

곳곳에 땅콩 하우스를 키운다

 

사람들은 혹한과 혹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밤에도 잠들지 못해 망치를 두드린다

모를 것이다

그들을 조종하는 게 도시의 본능이라는 것을

빽빽이 들어서 반짝이는 건물들

언젠가 바벨탑처럼 무너질 운명을 모르는지

표정이 없다

 

하이에나처럼 빈 곳을 찾아 헤매던

도시, 파괴 유전자가 작동한다

 

 


 

강현미 시인

서울 출생, 계간 《시현실 》 2017년 봄호 신인상 수상하며 등단. 동안문학회 회원. 시산맥 특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