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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손순미 시인 / 해당화 필 때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4. 11.

손순미 시인 / 해당화 필 때

 

 

창을 활짝 열고 이층의 여자는 아래층 해당화 향기를

끌어당기고 있다

노란 블라우스를 입은 여자의 상반신이

창문 언저리까지 내려왔다

아래층 해당화도 덩달아 고개를 젖히고

여자를 향해 붉은 향기를 밀어 올린다

조.금.만.더.

향기는 아래층과 이층의 정점인

여자의 풍만한 가슴이 드러난 부위에서 그만, 추락했다

아~이 실패한 체위를 속상해 하듯

여자는 줄담배를 핀다

해당화 붉은 꽃이 사.랑.해 하고 쿨룩거리자

여자는 단호하게 창문을 닫아 버린다

여자의 슬리퍼 소리가 오후 속으로 들어간다

전화가 울린다

이층의 여자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사각의 다방이 남편처럼 여자를 껴안고

오후의 적막 속으로 잠자러 간다

손님이 없는 다방으로 노을이 들어간다

제기랄,

해당화가 붉은 향기를 자꾸만 쏘아올린다

 

 


 

 

손순미 시인 / 살구나무

 

 

이발사 김씨가 살구나무에 목매달았다

죽은 개를 파묻었다

고양이를 파묻었다

슬픔이란 슬픔은 살구나무에 다 파묻었다

봄마다 살구나무

그 슬픔들을 추모하며

조화弔花 한 다발 피워 올렸다

살구나무 열심히 슬픔을 익혔다

어느 날 살구 사리알 주렁주렁 열렸다

슬픔은 완성되었다

 

『우리시』 6월호

 

 


 

손순미 시인

1964년 경남 고성에서 출생. 경성대국어국문학과 졸업. 고려대인문정보대학원 문예창작과 석사. 1997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및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칸나의 저녁』(서정시학, 2010)이 있음. 2008년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수혜. 2011년 부산작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