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은숙 시인 / 빌려주는 뼈
포옹, 둘이 하나가 되는 순간 순간의 동작으로 구조물이 된다.
골조가 필요한 저 행동은 서로 빌려주는 뼈가 된다.
내가 갖고 있는 뼈의 수만큼 나는 불안해서 가끔 다른 뼈를 상상한다. 살며시 기대어 일어서려는 뼈가 된다. 나의 뼈는 부축으로 일어날 수 있는데 뼈가 없는 것들의 힘은 어디서 생겨나는 걸까. 뼈가 없는 것들이 뼈 없이 일어서려 할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때때로 나는 부축하거나 때로는 주저앉히거나 한다. 주변의 친절한 도구가 되려한다.
나는 부추길 때 서 있는 뼈를 생각한다. 나쁜 뼈들이 나를 일어서게 하고, 뼈 없는 곳에 보형을 요구하기도 한다. 우리 동네 치과병원엔 아담한 남자가 무너진 치조골을 재건한다. 뼈 있는 것끼리 부딪히고 우리는 겹치는 교묘함을 욕망하지만,
포옹은 뼈를 빌려주는 일 완벽한 뼈가 되려 하는 일.
죽어있는 나무를 타고 오르는 저 넝쿨들, 세상의 줄기들은 다 뼈가 된다. 나의 뼈도 너의 뼈도, 상상의 뼈 하나로 일어서려 한다.
안은숙 시인 / 커튼
커튼 속엔 바람 수족이 있다 창문을 열면 사나워지는 커튼 저것은 남향이 키우는 뿔이다 바람이 돌진해올 때마다 등 뒤로 따돌리는 저 유연한 모면
열린 곳은 지겹고 어쩌다 열린 곳은 탐스러워 안과 밖의 변명을 섞을 때가 있다
저녁 바람은 치명의 범주에 있다 누가 뿔 달린 두 마리의 밀폐를 창문에 묶어놓았나 펄럭거리는 뿔로 고요를 닫고 있나
평생을 기른 하얀 머리카락 혹은 차가운 둔부, 열대야의 콧김 같은 면면들을 담고서 휘몰아치는 커튼의 방향 끝에 긴 머리카락이 있다 그것은 바람의 사치다
입술이 말라붙은 창틀 무릎을 꿇은 다리 사이로 저녁 바람이 분다 무릎은 구애 구애는 엉거주춤한 무릎
실내는 암흑처럼 어둡고 탐닉은 희다 바람 수족을 달고 편집광적으로 다가섰다가 하르르 커튼이 부서진다
- 2016년 <시에> 봄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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