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현 시인 / 허무맹랑
허무맹랑한 일들이 좋다 허무하거나 맹랑한 말들 역사들 사람들 국가들 선언들이 좋아졌다 왠지는 나도 모를 일 허무맹랑에는 답이라 할만한 게 없다 그것이 좋을 뿐이다
뜻있는 삶이라는 문장처럼 뜻없는 말은 없을 것이다 그런 건 없고 있어서도 안 될 것 같다 허무맹랑한 삶이라면 모를까
매일 밥을 먹고 매일 잠을 자고 매일 자판을 두드리고 매일 매일
박세현 시인 / 너무 많이 속고 살았어!
초등학교 동창회에 나가 30년 만에 소집된 얼굴들을 만나니 그 낯짝 속에 근대사의 주름이 옹기 종기 박혀있다 좀이 먹은 제몫의 세월 한접시 씩 받아놓고 다들 무거운 침묵에 접어 들었다 화물차기사, 보험설계사, 동사무소 직원, 카센타 주인, 죽은 놈 만만찮은 인생 실력들이지만 자본의 변두리에서 잡역부 노력하다 한생을 철거하기에 지장이 없이 없는 배역 하나씩 떠맡고 있다 찻집은 문을 닫았고 바다도 묵언에 든 시간 뒤걸음치듯 몇몇은 강문에서 경포대까지 반생을 몇걸음 요약하며 걸었다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추었던 간밤의 풍경들이 또한 피안처럼 멀었다.
박세현 시인 / 눈
창가에 앉았다 환한 창밖을 열었다. 저기 저건너 새하얀 눈이 내린다 어디서 오는걸까? 누구를 반기려는걸까? 뽀얀 눈! 갸느린 나뭇가지에 앉는다. 누구를 기다리는걸까? 그 님 이모습 보고있을까? 기다리다 지쳐 눈은 금방 눈물되어 울음으로 노래한다. 님이 그립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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