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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진엽 시인 / 우물가의 여인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4. 18.

최진엽 시인 / 우물가의 여인

 

 

여민 단추 사이로

더운 바람이 냉동되다

여섯 남편을 잉태한 몸으로

해를 안고 외줄을 타는 곡예사가

들리지 않는 노래를 한다

 

외로운 하늘을 쳐다본다

그 시선이 빗금을 그리고

금 사이 날이 서고 눈자위에

흩어지지 못하는 바람이 서 있다

 

목적지 없는 항해다

원시시대를 찾아가는 탐험가일까

야위어가는 내게 눈길을 준다

흔들리는 눈총을 모아 태워

어두운 가슴을 밝힌다

 

밤 기다려 물 길러온 여인

갈증을 채운 그녀

그를 기다려 또 우물가에서 서성이다

 

 


 

 

최진엽 시인 / 상자

 

 

두통약을 미리 먹어 두세요

그래야 출구를 찾을 수 있어요

 

색칠한 쪽에서 들려오는 소문은

믿지 마세요

거리를 뛰어다니는 분홍 토끼니까요

 

상자 안으로 사라지는 것들은

모두 표시해 두었어요

 

튀어 나올 수 있는 것은

탄력 좋은 고무줄에 묶여 있는

분홍 토끼뿐이에요.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았는데

눈 뜨면 다시 제자리인 것에 대한

설명은 꼭 해 주세요

 

오른 쪽으로 접혀진 시간은

왼쪽으로 갈 수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어요

 

알약 녹는 시간은 길지 않아요

두통도 곧 멈출 거에요

 

 


 

최진엽 시인

목포에서 출생. 광주교육대학, 숭실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2014년 《포엠포엠》 시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