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희 시인 / 꽃집을 나서는 아가씨
꽃집을 나서는 아가씨는 한 다발의 붉은 장미를 들고 있네요 누구에게 주려는 걸까? 상기된 얼굴
주며 행복한 시간보다 갖고 있어야만 행복한 시간이 더 많은 때 묻은 마음을 털어냅니다. 점점 불어나는 욕심이 식욕 탓만은 아닌 듯 합니다.
오늘은 꽃집을 나서는 아가씨처럼 한 다발의 붉은 사랑을 전할 상큼함만 있었으면 합니다.
최대희 시인 / 선물
먼 산을 물들이고 동구 밖을 물들이고 건널목을 물들이던 가을이 찾아와 앞마당 모서리가 환합니다
봄날 빗줄기에 등 구부린 민들레꽃 땡볕 여름 매미 울음으로 그늘진 느티나무를 아직 기억합니다
계절의 갈피 속, 방황하고 투정했던 나날 지금 생각해보면 사치였습니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세월의 뗏목에 밀려 불투명하게 남아있는 지금, 눈물로 얼룩진 강을 따라가는 늦은 후회는 약이 되고 남아있는 시간은 더욱 눈부십니다
내 선물 중 가장 소중한 것은 단 한번뿐인 시간바다 어떤 물고기를 잡을지 궁금한 세월의 물결 출렁입니다
최대희 시인 / 붉은 배꼽
가계의 계보가 신체의 중심부에 숨어있다
시간의 골짜기를 거슬러 오르니 어머니의 잔잔한 자장가가 들렸고 그 어머니의 어머니가 분주히 넘나들던 문지방과 이어진 황톳길 비가 내리면 붉은 노래로 이어지는 그 길에서 만난 환희와 고통의 이분법에서 양 극단을 오가며 끊임없이 적정선을 찾아가는 생각의 중심점
내 삶의 근원이며 생명의 방패연줄 오늘도 균형감각을 유지하며 생의 게임을 풀어가는 건 배꼽이 준 나의 몫 나의 과제다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세현 시인 / 허무맹랑 외 2편 (0) | 2022.04.18 |
---|---|
한성희 시인 / 아웃사이더 외 1편 (0) | 2022.04.18 |
진은영 시인 / 파울 클레의 관찰일기 (0) | 2022.04.18 |
김민율 시인 / 꼭짓점 자리 외 6편 (0) | 2022.04.18 |
조정권 시인 / 모습 없이 환한 모습 (0) | 2022.0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