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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대희 시인 / 꽃집을 나서는 아가씨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4. 18.

최대희 시인 / 꽃집을 나서는 아가씨

 

 

꽃집을 나서는 아가씨는

한 다발의 붉은 장미를 들고 있네요

누구에게 주려는 걸까?

상기된 얼굴

 

주며 행복한 시간보다

갖고 있어야만 행복한 시간이 더 많은

때 묻은 마음을 털어냅니다.

점점 불어나는 욕심이

식욕 탓만은 아닌 듯 합니다.

 

오늘은 꽃집을 나서는 아가씨처럼

한 다발의 붉은 사랑을 전할

상큼함만 있었으면 합니다.

 

 


 

 

최대희 시인 / 선물

 

 

먼 산을 물들이고

동구 밖을 물들이고

건널목을 물들이던

가을이 찾아와

앞마당 모서리가 환합니다

 

봄날

빗줄기에 등 구부린 민들레꽃

땡볕 여름

매미 울음으로 그늘진 느티나무를

아직 기억합니다

 

계절의 갈피 속, 방황하고

투정했던 나날

지금 생각해보면 사치였습니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세월의 뗏목에 밀려 불투명하게 남아있는

지금, 눈물로 얼룩진 강을 따라가는

늦은 후회는 약이 되고

남아있는 시간은 더욱 눈부십니다

 

내 선물 중 가장 소중한 것은

단 한번뿐인 시간바다

어떤 물고기를 잡을지 궁금한

세월의 물결 출렁입니다

 

 


 

 

최대희 시인 / 붉은 배꼽

 

 

가계의 계보가

신체의 중심부에 숨어있다

 

시간의 골짜기를 거슬러 오르니

어머니의 잔잔한 자장가가 들렸고

그 어머니의 어머니가 분주히 넘나들던

문지방과 이어진 황톳길

비가 내리면 붉은 노래로 이어지는

그 길에서 만난

환희와 고통의 이분법에서

양 극단을 오가며 끊임없이

적정선을 찾아가는

생각의 중심점

 

내 삶의 근원이며

생명의 방패연줄

오늘도 균형감각을 유지하며

생의 게임을 풀어가는 건

배꼽이 준 나의 몫

나의 과제다

 

 


 

최대희 시인(본명 최정희)

경기도 평택에서 출생. 경기대 국문과 졸업. 아주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정책학과 석사 수료. 1999년 <문학세계>로 등단. 2004년 시집 『그리움은 오솔길에 있다』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치즈사랑』, 『선물』 『그리움은 오솔길에 있다』 등이 있음. 중등 교과서 『한문3』에 '친구야' 작품 실림. 경기문학인 대상, 농촌문학상 수상. 국제PEN한국본부 평화작가위원, 한국경기시인협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