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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남식 시인 / 그네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4. 19.

정남식 시인 / 그네

 

 

마을 앞 정자나무 그네 하나

고요 속에 멈춰 서 있다

바람 한 점 날아가

먼발치서 놀던 아이들 불러오면

사색의 끈 풀어 아이들을 맞는다

한 아이씩 태워 저어 먼 곳까지

보여주고 돌아오는 길

산등성이 끝자락에 꿈이 걸렸다고

속삭였는지 아이는 금새 함박 웃음

짓는다

 

바람이 밀어 올려

구르는 힘보다 더 멀리 올랐다

다시 내려 꽂는다

멈춤도 오름도

준비하는 시간을 기다려야 하듯이

삶은 그렇게 준비하는

거라고 자꾸만 속삭인다

가냘픈 끈에 삶을 싣고

오름도 내림도 다 경험한 뒤

서서히 멈춰 서는 것이라고

그네는 자꾸 속삭인다

 

 


 

 

정남식 시인 / 저녁노을, 낮은 한숨으로 지는 그대

 

 

여름 한낮 구름의 얼굴

하늘 푸른 거울에서 하야말간 지우며

햇빛은 우리 사랑의 물리를 고양이처럼 핥는다

길 떠난 사랑 도한 오지 않고

 

먹을거리 가게의 처마 끝엔

웬일인지 여름 고드름이 무장 열리고

오지 않는 뜨거운 사랑을 견디며

고드름을 사서 다먹는다

꼬드득, 십는 혀끝으로 내 사랑 부르리라

 

사랑은 지루히게 더디고

구불구불한 날들의 끝처럼

텅 마른 그대 날 저물 듯이 오리라

그대, 구름 같은 그대

하늘 푸른 거울에 낮 붉히며 비치는 구름이여

저녁노을, 낮은 한숨으로 피었다

지는 그대

 

 


 

정남식 시인

1963년 서울에서 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 1988년《문학과 사회》에 <물-비>외 4편으로 등단. 시집으로  『시집』(문학과지성사, 1990)와 『철갑 고래 뱃속에서』(문학과지성사, 2005)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