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서 시인 / 당신이라는 책
툇마루에 반쯤 읽던 책 그대롭니다. 지난 여름엔 잠자리가 와서 이만 개의 눈동자로 더듬다 가고 대숲에 술렁이던 바람, 계절 두어 장 넘기고 갔습니다.
사물을 비추는 것이 거울이듯 책은 사람을 비추는 종이 거울 모든 책의 종착은 사람, 사람의 살아 있음 삶이었습니다.
툇마루에 반쯤 읽던 당신 그대롭니다. 목차도 쪽수도 없이 내용도 두께도 알 수 없는 누군가 침 발라 마구 넘기고 밑줄과 낙서로 어지러운 행간마다 머물러 몸을 꽂아 읽어도 도무지 해독할 수 없는 가장 적극적인 독법이 씩씩한 오독이 되는
모든 책이 거리로 나앉았을 때 집달리와 함께 와서 영혼을 긋고 간 당신
김민서 시인 / 상강
서리가 겨울로 가는 지름길을 냈다
여왕벌은 수벌들을 모두 물리고 나무둥치의 썩은 품으로 파고든다
죽지 않기 위해서일까 죽어도 좋다고 겨우내 타이르기 위해서일까
날을 세워 달려들 눈보라를 견디는 시간
외로움의 관절 하얗게 삐걱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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