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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백규 시인 / 지구6번째 신 대멸종

by 파스칼바이런 2022. 4. 22.

최백규 시인 / 지구6번째 신 대멸종

 

 

  봄이 와도 죽음은 유행이었다

  꽃이 추락하는 날마다 새들은 치솟는다는 소문이 떠돌고

  창밖엔 하얀 유령들만 날렸다

 

  네 평 남짓한 공간은 눈이 흩어진 개의 시차를 앓고

  핏줄도 쓰다듬지 못한 채 눈을 감으면 손목은 펜 위로 부서지는 파도의 주파수가 된다 그럴 때마다 불타는 별들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누구나 살아있는 동안 심장 끝에서 은하가 자전한다는 사실을 안다 늙은 항성보다 천천히 무너져가는 지구라면 사각의 무덤 속에는 더러운 시가 있을까

  흙에서 비가 차오르면 일 초마다 꽃이 지는 순간 육십 초는 다음 해 꽃나무

 

  퍼지는 담배 향을 골목에 앉아있는 무거운 돌이라 생각해보자

  얼어붙은 명왕성을 암흑에 번지는 먼 블랙홀이라 해보자

  천국은 두 번 다시 공전하지 못할 숨이라 하자

 

  이것을 혁명이자 당신들의 멸망이라 적어놓겠다 몇백억 년을 돌아서 우주가 녹아내릴 때 최초의 중력으로 짖을 수 있도록, 모두의 종교와 역사를 대표하도록

 

  두 발이 서야 할 대지가 떠오르면 세계 너머의 하늘이 가라앉고 나는 그 영원에서 기다릴 것이다

 

  돌아가고 싶은 세상이 있었다

 

월간 『문학사상』 2016년 3월호 발표

 

 


 

최백규 시인

1992년 대구에서 출생. 2014년 월간《문학사상》으로 등단. 현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