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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사이 시인 / 길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4. 22.

김사이 시인 / 길

 

 

남대문 시장에 들어선다

한 줄 바람이 스친 듯 땅거미가 덥석 내려앉았다

직선으로 쫙 내리뻗은 중앙 통로

아무도, 아무 것도 없었으면

한낮 햇살보다 더 밝은

상품들은 시위하듯 넘쳐났다

먹고 싸우고 흥정하고 즐기는

이 길 위에 안에

내가 갈 길도 들어 있으니,

잠깐 구경한다고 한눈을 파는 사이

헝클어진 길 안에 어둠으로 서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뛰었다

제 살 깎아가며 길은 실핏줄처럼 좁아지고

하나뿐인 길이면서 그물처럼 얽혀 있는 사람길

서로가 비껴서 막고 있어

혼자서는 나아가지 못하는

알 수 없는 생(生)이라는 길

 

ㅡ김사이(1971~), 계간『문학청춘』2011 겨울호

 

 


 

 

김사이 시인 / 사랑

 

 

사월이면 텅 빈 놀이터에

연두빛 풀씨 하나 살짝 물어다 놓고 날아간

바람의 날개를 기억하는 눈이 있어

아이는 한발짝 한발짝 어른이 되어가지

색이 다르고 성이 다른 것을 차이라 말하고

차별하지 않는

고운 네가

내 죽음을 네 죽음처럼 보살피는 사랑이지

절망으로도 살아야 하는 이유이지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고 한다> 창비.2018

 

 


 

김사이 시인

1971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호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구로노동자문학회'에서 시 공부를 했다. 2002년 계간 '시평' 여름호에 시 '서른여섯 살 꽃' 외 7편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 첫 시집 2008년 실천문학에서「반성하다 그만 둔 날」(실천문학사, 2009)을 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