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이 시인 / 길
남대문 시장에 들어선다 한 줄 바람이 스친 듯 땅거미가 덥석 내려앉았다 직선으로 쫙 내리뻗은 중앙 통로 아무도, 아무 것도 없었으면 한낮 햇살보다 더 밝은 상품들은 시위하듯 넘쳐났다 먹고 싸우고 흥정하고 즐기는 이 길 위에 안에 내가 갈 길도 들어 있으니, 잠깐 구경한다고 한눈을 파는 사이 헝클어진 길 안에 어둠으로 서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뛰었다 제 살 깎아가며 길은 실핏줄처럼 좁아지고 하나뿐인 길이면서 그물처럼 얽혀 있는 사람길 서로가 비껴서 막고 있어 혼자서는 나아가지 못하는 알 수 없는 생(生)이라는 길
ㅡ김사이(1971~), 계간『문학청춘』2011 겨울호
김사이 시인 / 사랑
사월이면 텅 빈 놀이터에 연두빛 풀씨 하나 살짝 물어다 놓고 날아간 바람의 날개를 기억하는 눈이 있어 아이는 한발짝 한발짝 어른이 되어가지 색이 다르고 성이 다른 것을 차이라 말하고 차별하지 않는 고운 네가 내 죽음을 네 죽음처럼 보살피는 사랑이지 절망으로도 살아야 하는 이유이지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고 한다> 창비.2018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승민 시인 / 그늘의 노년(老年) 외 2편 (0) | 2022.04.22 |
---|---|
김수우 시인 / 흔들의자 외 3편 (0) | 2022.04.22 |
김백형 시인 / Update 외 2편 (0) | 2022.04.22 |
최백규 시인 / 지구6번째 신 대멸종 (0) | 2022.04.22 |
이병철 시인 / 소나기 외 4편 (0) | 2022.0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