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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정임 시인 / 일곱 빛깔 강물은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4. 25.

김정임 시인 / 일곱 빛깔 강물은

 

 

어느 먼 부족이 신으로 섬겼다는 무지개뱀 같아

깊은 물속에 저 많은 색을 숨겨놓고

 

강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가는 달의 뺨이 야윌 때

사라진 부족의 이야기가 여러 겹으로 흔들리고 있다

 

당신은 저기 바위에 웅크려 무언가 새기는 사람

아주 오래전에부터 무지개뱀을 찾아 헤맸을까

정을 쪼며 신을 경배하는 무릎은 닳았다

 

나는 그 불안한 거리를 읽는 순례객

수많은 날들이 구석기의 긴 밤을 되돌아 나온다

 

모래알을 쓸며 내가 헤맨 곳은 수천 개 물결이 일렁이는 당신의 가슴 속

오래된 유물은 몇 개의 문장으로 떠오르기도 하지만

 

수평선 너머 새벽이 긴 허리를 구불거리며 어딘가를 향하네

수시로 형체를 바꿔야 하는지 강물은 겁을 벗듯 일곱 빛깔 허물을 벗네

 

아름답고 쓸쓸한 무지개가 피어나는 순간이지

 

흐르고 흘러 당신에게 닿을 수 있다면

 

 


 

 

김정임 시인 / 붉은사슴동굴

 

 

오동나무 안에 당신이 누워 있다 부은 무릎을 펴는지

나무 틈 사이 삼베옷 스치는 소리가 났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빙 둘러서서 제를 올렸다

 

어디쯤 꽃잎이 열린 곳일까 눈이 어두운 사람처럼

오동나무 무늬를 더듬어야 우리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추억들이 푸른 핏줄을 터뜨리며 둥글게 솟은 흙속으로

스며들자 검은 구름이 터질 것같이 어깨를 들썩였다

 

당신은 이미 저 빙하기 붉은사슴동굴에서 슬픔이 깃든

뼈를 수만 번 누이고 있는데 나는 어느 시간의

물거품을 휘젓고 있는 것일까

 

물기 빠져나간 바람의 흰 깃털이 저녁 숲에 흩날렸다

깊은 숨을 몰아쉬는 당신이 달력 속에 굵은 빗금을

천천히 그었다.

 

 


 

김정임 시인

대구 출생. 2002년 《미네르바》를 통해 등단. 2008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시집으로 『달빛 문장을 읽다』(문학아카데미, 2008)와  『붉은사슴동굴』(천년의시작, 2013), 『마사의 침묵』(미네르바, 2019)이 있음. 현재 <월간문학> 기획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