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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희음 시인 / 동거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4. 25.

희음 시인 / 동거

 

 

이런 너의 목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들려 뜻밖의 새소리

나는 아직 안 끝났구나

 

남겨질 것들, 이라고 네가 말할 때

나는 나만 생각하면서 슬펐다

 

내가 울 때 왜 너는 따라서 울지 않는지

눈물을 키우는

나의 얼굴 앞에서

생각과 슬픔이 가능하다는 건 어떤 것인지

너는 묻고 있었을까

 

도시와 새가 아직도 서로를 밀어내지 않는 게 신기해

 

너의 표정을 이해할 수 없어 나는 앓았지만

이제 그걸 따라서 하는 내가 있다

 

남겨진 것이 남겨진 채로 있는 것은 좋지 않아

남겨진 이후에는

남아야 하지

 

없는 것과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게 신기해

 

회벽들 틈에서

날개를 접고 우는 새가 있고

 

나는

새의

울음을

본다.

 

 


 

 

희음 시인 / 맨스플레인

 

 

구멍이 되려고 태어나신다

소리 나는 구멍이 되려고

조였다 풀었다 소리 나는 구멍이

부드럽고 미끄럽게 조였다 풀었다

 

제대로 죽여주겠다는 막대기를 오르내리며,

바늘머리를 빼닮은 신념들이

'제대로'라는 오버사이즈를 걸치고

허락 없이 자꾸만 흘러 들어와서

 

구멍이 되려고 태어나신 구멍은

간지러워 죽는다

 

구멍이 되려고 태어나신 구멍은

 

도리가 없다

생으로부터 돌아서신다

 

죽음으로 생을 벅벅 긁으며

죽음이 낫구나,

죽음은 이렇게 시원하구나!

 

 


 

희음 시인

2016년 《시와 반시》 상반기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  시집 『구두를 신고 불을 지폈다』 출판(공저). 시집 『치마들은 마주 본다 들추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