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임 시인 / 일곱 빛깔 강물은
어느 먼 부족이 신으로 섬겼다는 무지개뱀 같아 깊은 물속에 저 많은 색을 숨겨놓고
강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가는 달의 뺨이 야윌 때 사라진 부족의 이야기가 여러 겹으로 흔들리고 있다
당신은 저기 바위에 웅크려 무언가 새기는 사람 아주 오래전에부터 무지개뱀을 찾아 헤맸을까 정을 쪼며 신을 경배하는 무릎은 닳았다
나는 그 불안한 거리를 읽는 순례객 수많은 날들이 구석기의 긴 밤을 되돌아 나온다
모래알을 쓸며 내가 헤맨 곳은 수천 개 물결이 일렁이는 당신의 가슴 속 오래된 유물은 몇 개의 문장으로 떠오르기도 하지만
수평선 너머 새벽이 긴 허리를 구불거리며 어딘가를 향하네 수시로 형체를 바꿔야 하는지 강물은 겁을 벗듯 일곱 빛깔 허물을 벗네
아름답고 쓸쓸한 무지개가 피어나는 순간이지
흐르고 흘러 당신에게 닿을 수 있다면
김정임 시인 / 붉은사슴동굴
오동나무 안에 당신이 누워 있다 부은 무릎을 펴는지 나무 틈 사이 삼베옷 스치는 소리가 났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빙 둘러서서 제를 올렸다
어디쯤 꽃잎이 열린 곳일까 눈이 어두운 사람처럼 오동나무 무늬를 더듬어야 우리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추억들이 푸른 핏줄을 터뜨리며 둥글게 솟은 흙속으로 스며들자 검은 구름이 터질 것같이 어깨를 들썩였다
당신은 이미 저 빙하기 붉은사슴동굴에서 슬픔이 깃든 뼈를 수만 번 누이고 있는데 나는 어느 시간의 물거품을 휘젓고 있는 것일까
물기 빠져나간 바람의 흰 깃털이 저녁 숲에 흩날렸다 깊은 숨을 몰아쉬는 당신이 달력 속에 굵은 빗금을 천천히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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