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 시인 / 내 등에 꽂힌 칼
바람이 너를 데려가리라
내 등에 꽂힌 칼에서는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다.
너의 심장과 너의 콩팥과 너의 두 눈은 먼지 속으로 사라지지 않고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 살아 나를 시퍼렇게 바라보리라
너의 머리에는 지금 돌팔매질을 하기 위해 검은 두건이 씌워지지만 너의 시체를 묻을 구덩이는 이미 네 곁에 깊게 파여 있지만 너는 죽어서 살아 나의 죽음을 영원히 끝나지 않게 하고 있다.
너를 향한 나의 욕망 너를 유인했던 그 어두운 폐가의 차가운 돌벽 너의 옷을 벗기려는 순간 내 등에 꽂힌 칼
너의 아버지는 네 얼굴에 침을 뱉고 너의 오빠는 너의 머리를 향해 손바닥보다 더 큰 돌을 던진다. 마을 남자들이 함께 던지는 돌이 우박처럼 쏟아져도 너는 입술을 깨물며 비명을 참고 있다. 두건이 찢어지고 붉은 피가 검은 옷을 물들여도 너는 쓰러지지 않는다.
네가 내 등에 꽂은 칼은 빠지지 않고 나를 영원히 고통 속에서 죽어가게 만든다. 나는 언제나 죽음에 묶여 있고 너는 지금부터 공기처럼 자유로워질 것이다
계간 『시와 표현』 2014년 겨울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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