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 시인 / 배다리헌책방
당신은, 옛이야기 책
알록달록한 낡은 표지 속에서 아나, 곶감, 하면 아기 울음소리 뚝, 그칠 것 같은 오래된 골목
방앗간 옆 헌책방 난전에 쭈그리고 앉아 읽던 장화홍련콩쥐밭쥐홍길동흥부놀부심청이와어린왕자피터팬백설공주고뇌하는햄릿과해와달이된젊은베르테르까지,
해거름에 별책부록 같은 아버지 헛기침 소리 별빛으로 붉게 쏟아지면 우르르 마중 나오던 골목의 신화들,
마지막 잎새처럼 슬프고도 아름다운 옛이야기들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라,
어린 손자의 손을 잡고 밑줄 친 영웅들을 몇 분 골라 바구니에 담고 있는
화수분 같은 골목은 오래 묵을수록 고전이 되고 경전이 된다.
시집 <유채꽃 광장의 증언> 2021. 문학아카데미
김현주 시인 / 바다의 책
어둠 속 울돌목, 노란 안전선의 점자를 읽는다
천 개의 눈으로 두리번거리는 하얀 지팡이 똑똑, 하얀 지팡이가 천천히 바다를 더듬을 때마다 한 자 한 자 물 위로 떠오르는 바다의 낱말들
어둠은 빛으로 나아가는 울돌목이다
아득한 빛과 어둠의 경계, 바다를 움켜쥐자 손바닥 안에 물의 지도가 생긴다 점과 점으로 색인 된 방대한 바다의 내용을 천천히 읽는다
여기는 넙치의 길, 여기는 문어의 길, 여기는 생명의 길, 여기는 짐승의 길, 여기는 사망의 길, 어미 다랑어가 새끼 다랑어를 끼고 젖을 물리며 유유히 학습하는 난 바다
물살 센 사거리 울돌목을 지나 사슴같이 바다를 건너는 하얀 영혼의 발끝이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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