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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미 시인 / 침대에서 후렌치 파이
영혼을 이불처럼 걷어 툭툭 털고 볕에 내어 말릴 수 있겠니, 주먹을 쥐었다 펴면 우수수 쏟아지는 부스러기들을 모아 기억만으로 몸을 넘어설 수 있겠니, 문구점 앞 새빨간 슬러시를 훔쳐 도망가다 컵을 엎지를 때, 화단의 튤립을 뽑고 막대사탕을 심을 때, 깨어진 구슬들이 웅성웅성 귓가에 부딪힐 때, 입가를 온통 바스러진 단것들로 장식하며, 최선을 다해 망쳐버릴 거야, 손톱을 물어뜯으며 사정없이 못생겨질 거야, 너와 나 이후를 견딜 수 없을 때까지, 사소한 믿음에 남은 생을 걸고, 팔다리를 아무렇게나 휘저으며, 드넓어지며, 옛 이불들이 켜켜이 쌓인 옷장 속에 숨어들어, 납작해져야지, 조금씩 흩어지다 흔적으로만 남아야지, 배게 속에 감춰둔 나쁜 낙서들을 베어 먹으며, 이빨이 모조리 새까맣게 변하기를 기다려야지, 부서진 빛의 조각들이 입술의 위성처럼 떠돌던 여름에
계간 『시인시대』 2021년 가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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