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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일만 시인 / 낫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5. 7.

2005 하반기 현대시 신인상 당선작

박일만 시인 / 낫

 

 

이것은 불의 뜨거움 속에서

순함을 다스려 우려낸 몸이다.

저잣거리를 떠나 떠도는, 다분히

천박한 태생이었으나

짙푸른 분노를 두드려

날카로움을 얻었기에

그 품성이 매사에 도리를 다하는

촌부의 둥근 갈비뼈를 닮았다.

그러하니 암흑 속에서 몸을 던져

세상을 세우고자 하는 모든 이의

귀감이 되고도 남음이 없도다, 오늘밤

한 시대의 어둠을 삭혀 횃불을 높이 드는

거짓 선지자의 눈빛이여, 이것은

침묵을 섬기는 몸.

짙푸른 분노를 두들겨

날카로움을 안으로 숨긴

지혜의 둥근 덩어리.

 

 


 

 

박일만 시인 / 이장移葬

 

 

한 생을 감쌌던 늑골이 무너져

누우신 자리가 무척이나 불편하셨겠다.

용서하는 법을 터득하는 중이신가,

염을 했던 허물까지 벗으신 채

의치를 내보이며 웃으신다.

가지런한 뼈 사이에서

들려오는 헛기침 소리.

식솔보다 객짓밥을 좋아하셔서

늘 바람 속에 집을 짓고 사셨지.

비탈진 삶,

호방하시던 성품,

이제 그만 세상의 업보를 푸세요.

꽃 덮고

햇빛 덮고

바람처럼 잊으세요.

천 근 만 근 떨어지지 않는 발을 떼며

내려오는 하산길,

희끗한 머리카락 몇이 따라와 기척을 한다.

아, 아버지!

 

 


 

 

박일만 시인 / 객관적인 달

 

 

1

 

저문 당신의 정원은 관습처럼 교교하다.

서늘한 눈빛으로 당신의 정원을 흔드는,

나는, 객관적인 달이다.

망연한 허공 그 중심을 듣고 서서

은하계와 내통하는 은밀함으로

오늘밤 당신과 불온한 인연을 맺고 싶다.

그러나 당신은, 내가 도저히

건널 수 없는 무채색의 들판을 키우고,

수심 가득한 책을 읽는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목소리로,

당신의 이름을 부른다, 성호를 긋듯,

마, 리, 아

 

2

 

당신, 내 안에 있군요.

무수한 시간 속에 나를 저장하는군요.

쿵쾅거리는 심장의 격렬함,

마음속 깊이

희미한 의식에 전깃불이 들어오면서

붉은 피가 흐르네요.

오래 전에 꾸었던 꿈의 한 장면이

스, 크, 랩, 되, 네, 요.

내가 당신 안에 있어도 될까요?

추억 속에 깨알 같은 시간을 슬어 놓고····

 

 


 

박일만 시인

전북 장수에서 출생.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정(詩) 수료. 2005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사람의 무늬』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