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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수 시인 / 화살나무
화살 한 짐 지고 서면 과녁 마저 사라지는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생각을 잊었는지 끝끝내 날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천천히 바라보니 내 아버지를 똑 닮았다 빠른 걸음 날카롭게 빛나는 촉을 품고도 가난만 우글거리는 산마루를 지키면서
제대로 한 번을 날아보지 못했으니 속으론 얼마나 날아가고 싶었을까? 붉어진 서쪽 하늘을 몇 백 번 태웠을까?
나 또한 심장 안에 열망만을 쌓다가 후회처럼 늦가을에 마침내 다달았지만 한 번은 날아갈 것이다 하늘 우물 속으로
-『화살나무』, 고요아침 2020.
김월수 시인 / 빙화(氷花)
북극에서 처음 시작한 이별이 그렇게 좋은가요 오늘만큼은 시작점을 너무 빨리 만들지 마세요 슬픔이 가득한 봉오리에선 이별이 얼굴을 내밀지 몰라요 뜨거운 상태로 다가오지 말아요 당신 숨결이 손 끝에 닿는 순간, 그냥 한꺼번에 녹아내릴 거예요
유리창에서 막 피고 있는 꽃을 바라볼 수 있는 이 순간 밖은 온통 명랑들뿐이에요 눈들은 다정하고 힘센 바람까지 너무나 친절해요 햇살이 반짝, 설산 위에 머무를 때 미끄러지지 않도록 제발 슬픔의 안부가 되어주세요
깊이를 알 수 없는 그 단단함이 당신과 나 사이에서 갈라지도록 내버려두세요 우리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번지고 있는 거잖아요 빙점을 살려내려는 차가운 몸부림을 멈추지 말아줘요
헤어진 사람과는 헤어진 공간만 있을 뿐이잖아요
나 오늘 어디든 가서 푹푹 빠져볼래요 그러면 그 속에서 잠자고 있는 당신 닮은 에델바이스 한 포기 발견할 수 있을까요
<시인동네> 2020.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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