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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수 시인 / 모래인간
초등학교 일학년 나의 첫 미술수업은 모래인간 그리기 4B 연필로 윤곽선을 그리고 선을 따라 풀칠을 한 뒤 풀이 마르기 전 얼른 모래를 뿌리면 모래인간이 태어나는 것이었다 풀기가 다한 모래알이 떨어져서 서걱이는 소리가 들려오면 울음소리인가 하고 새 풀을 발라주었다 고향 마을 떠나 도회로 올 때도 응당 책가방 속에 담겨 따라온 모래인간 어머니는 유산한 사내아이를 평생 잊지 못했는데 세상에서 만나지 못한 동생이라도 생긴 듯이 보살피던 그를 잃어버린 것이 언제였을까 먼 훗날 티벳의 모래 만다라 이야기를 들었다 만다라가 완성되면 스님들은 애써 공들인 색색의 그림을 바람에 흩어 지워버린다고 했다 그림 너머의 세계를 잊지 않기 위해서 시원하게 무너지는 모래의 해방감을 잊지 않기 위해서 지우는 일로 만다라의 완성에 이른다는 것이었다 까맣게 잊고 지낸 모래인간을 다시 만나게 된 건 유골가루를 흙에 버무려 풍장을 하였을 때다 그때 내 몸에서도 모래 떨어져나가는 소리가 났다 오래 전 함께 서걱이며 놀던 모래인간은 한번도 나를 떠난 적이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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