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혁 시인 / 시(詩) -아내에게
내 삶의 강물 위에 누가 띄워 놓았나 이십여 년 전부터 떠 있는 종이배 하나 내 마음 흔들릴 때마다 멀미하는 가엾고 조그만 예쁜 돛단배 하나 그대
『아버지의 도장』 ,김재혁, 민음사, 2006년, 64쪽
김재혁 시인 / 초여름 풍경
날이 덥다 보이지 않는 새들이 나무 위에서 지저귄다 새들의 울음소리에 나뭇잎들이 시든다 더운 날 나무에게는 잦은 새 소리가 불안처럼 느껴진다 익어가는 토마토마다 빨갛게 독기가 차 오르고 철길을 기어가는 전철의 터진 내장에서 질질질 질긴 기름이 떨어진다 약속에 늦은 한낮이 헐레벌떡 달려온 아파트 화단엔 기다리는 풀 풀벌레도 없다 아이의 손에 들린 풍선이 터진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서 고무 타는 냄새가 난다
김재혁 시인 / 햇살
아파트를 돌아 나오면서 나는 문득 생각한다 햇살이 따스하군 지난해 정동진 바닷가 모래를 덥혀 주던 저 햇살, 맑은 햇살이 자살 충동을 던진다고, 나는 어느 신문에선가 읽었다 뫼로소가 아랍인을 죽인 것도 저 빛나는 햇살 때문이라는데, 봄이 오는 아파트 도로를 걸어 나오면서 햇살의 유혹에 못 이겨 보도블록 밑에서 뭔가 몸부림치는지 발바닥이 간지럽다 그래, 저 햇살 속에는 삶과 죽음이 다 들어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렇다면 벤치에 앉아 눈을 감고 햇볕을 쬐는 저 여자의 머릿속엔 무엇이 들어 있을까
『아버지의 도장』 ,김재혁, 민음사, 2006년, 59쪽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김정희 시인 / 조문객(問客) (0) | 2022.05.10 |
|---|---|
| 최윤정 시인 / 구석들 2 외 1편 (0) | 2022.05.10 |
| 정해영 시인 / 압화 (0) | 2022.05.09 |
| 손택수 시인 / 모래인간 (0) | 2022.05.09 |
| 최예슬 시인 / 변명 외 4편 (0) | 2022.05.0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