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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정 시인 / 구석들 2 —밖에서 밖으로
사람들이 성냥개비처럼 흩어진다 자꾸만 흩어져 구석에 쌓인다 지하도 구석에서 건물 옥상 구석까지
막다를 골목길 구석은 달아날 곳 없고 찢을 것도 없다 긁힌 자리 진물 고이듯 이끼들끼리 모여 있다
바람이 제 그림자 물고 이끼들 밖으로 미끄러진다
*
혀끝이 뾰족해지는 계절 자꾸만 말이 헛나온다 첨탑은 구름을 찌르고 한 발짝 멀어지고
어디로 갈까 허기질 때마다 바람은 처마 끝 잡고 길고 날카로운 고드름이 된다
심장이라도 파먹을 기세로 자그락자그락 나무를 향해 몰려갔다 다시 미끄러진다
*
부서진 플라타너스들 맥박이 점점 빨라진다 구석에서 불어와 사람들 다리에 붙여놓고 간다
구석이 모여 허공의 숨을 견딘다 총알이 구멍을 견디듯이 바람이 바깥을 버티듯이
구두가 길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길게 내뱉는다
최윤정 시인 / 설탕이 녹는 저녁
달이 해를 뉘어놓고 저녁이 살빛 설탕으로 부서질 무렵 모래는 잠시 촛불이 된다 바람의 행방을 더듬어 길을 낸다
고양이 발톱이 허공을 할퀸다 그녀의 사랑은 반투명 셀로판지 사막의 필름은 끝없이 감겨가고 안전선 밖의 일들은 모래를 삼킨 바다와 숲에서 일어나고
모래알이 손가락 사이로 흐른다 선인장의 절룩거림은 멈추지 않고 도마뱀 가면을 든 그가 이쪽을 보며 서 있다
지붕을 뚫고 창문 옆구리 터지도록 설탕가루 쏟아지는 저녁
부러진 손톱을 묻고 찢겨진 가면을 덮어도 답은 없다 설탕 그물 아래 그녀의 얼룩진 가면들이 찬 숟가락으로 엎드려 있다
밀림을 달리는 그의 심장 사자의 굶주린 갈기털이 울부짖을 무렵 해의 꼬리가 바스락거리며 안전선 밖 바다를 감아올린다 심장의 갈기털, 조금씩 녹이며 빛 부스러기들이 달을 향해 이륙한다
밧줄처럼 묶였다가 풀어지는 길 따라 달콤한 빛의 질량을 뿌리며 꿈꾸는 것들은 설탕가루로 흩어지고
닫힌 성문 위로 눈을 감고 말이 없다 달의 옆얼굴이 북극성 쪽으로 일그러져 있다
—시집『공중산책』(2017)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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