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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희 시인 / 공터 정원사
아파트로 이사 온 이후 환한 곳에 숨어 있는 공터 하나를 만났다
벌거벗은 지렁이에게 나뭇잎 한 장 덮어주는 기분으로 자주 공터를 찾았다
공터가 있어 아파트에 정을 붙일 수 있었다
환한 황무지 같은 곳
돌멩이들이 아무렇게나 뒹굴어도 좋은 곳
지난 홍수에 떠밀려온 나무가 제멋대로 서 있는 곳
화려한 곳에 원시적인 풍경이 숨어 있었다
나는 아무도 없는 공터의 주민이 되었다 날마다 공터에 앉아 있을 때가 많았다
마음 속 풍경이 밖으로 삐져나온 곳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이 나를 위로한다
공터는 아파트 가격이 오를 때마다 단풍나무 한 그루를 프리미엄으로 받았다
스스로 보잘 것 없음으로 채워가는 환한 민들레 개망초 달맞이꽃 아카시아 자귀나무 오동나무
쳐다보는 일만으로도 나는 공터를 가꾸는 정원사가 되었다
웹진 『시인광장』 2021년 12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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