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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희 시인 / 신산한 각도 42°
허공의 입구에 실마리를 걸어놓는다 햇살과 구름기둥에 일곱 줄을 매어놓고 프리즘으로 실어 보내는 저 정령 실낱같은 단서를 통해 풀리는 오해같은 신산한 의미를 걸어두고 있다
42° 혹은 51° 빛의 굴절 그리고 반사 물방울 생의 저 안 어김없이 만나던 애愛와 증憎, 희비喜悲의 모퉁이마다 허리 꺽어야했던 고비의 길들
세상 모든 것들은 제 안의 길을 굽혀야 무지개 뜨는 걸까 몸 틀은 등나무 보라꽃이 비에 젖어 새롭다 비는 컴컴했던 오후를 쓸어 우산 속에 접히고 구름 틈에 끼었던 햇살이 눈부시다
살아간다는 것은 한 가지 색이 아닌 다양한 빛의 혼융임을 얼핏 보여주는 저 햇살 속에 숨어있는 빨주노초파남보
젖은 몸 말리고 돌아오는 해거름녁 길모퉁이 볼록거울 몸 구부려 저쪽 길을 비추고 있다
이원희 시인 / 응결의 시간
떠남은 되돌아올 날개를 가졌으므로, 냇물은 바다로 흐르지 않았다 호수에 머물러 거슬러 오르던 연어, 햇살에 되오던 철새를 추억한다
그대 머물다 떠난 청명한 자리, 미처 돌아오지 않은 마음에 중심을 옮기고 돌고 돌아, 맴돈다는 것을 잊고 돌아도 다슬기 나선처럼 결코 중심에 다다르지 못할 허튼 시간 속, 담가둔 별빛만 아리다
풍경들 또 다른 계절로 돌아오기 위해 사라진 소한 무렵, 기다림의 언저리쯤 살얼음이 핀다 응어리 고요히 응결되는 몸속 파문마저 얼음에 갇히자 비로소 뼈를 드러내는 고독, 서슬처럼 사슬이 깊다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잠시 풀린 햇살에 쩡쩡 금을 그어 슬픈 무늬를 만든다 흐린 하늘을 날아가는 흰뺨검둥오리 어디로 가는 것일까 별이 빛나는 소리로 울던 풀벌레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결빙 위에 눈 쌓이는 저녁, 잎을 벗은 상수리나무도 떠나버린 새둥지를 끌어안고 서 있다
이원희 시인 / 나노 기술로 마음을
마음 분자를 10억분의 1로 부수고 부수어 보여드린다면 이 심정 아실까요
우주가 해체되던 날 뇌가 손상되고 만 그날도 비가 내리고 있었지요. 깊이 찌르는 그 감당 못할 말에 무뇌아 되어 어둠에 붙박혔어요
생각했어야만 했고 했어야 했던 것들 되짚어보고 되짚어보는 마음 속 위안이란 세상에 입 다물어 상처 딱지처럼 나를 밀봉해 버리는 것
고치 속에 웅크리고 누워 너라는 단 하나의 생각만으로 날이 저물고 또 날이 저물어 고르디우스 매듭처럼 끊어버렸던 그러나 한 결 같이 되살아나는 보고 싶다는, 마음 저층의 내가 읽힌 다는
나노 기술은 어긋난 마음 이어줄까요 우주로 이르는 통로 열릴까요
이원희 시인 / 허기지다
정동 간이역에 고슴도치 생각이 움츠리고 있다. 레일을 따라 멀리 두는 눈길과 마주치는 끝의 헛것, 그 곳에 이를 이 길 다가올 몇 킬로미터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몇 미터의 슬픔 추억에 찔려 아픈 몸의 통각은 발을 내딛기도 전에 끝을 계산한다
끌어당기던 눈빛도 마음을 둥그리던 목소리도 시간은 바싹 말려 가시로 만들었지 몸의 가시는 관심은 간섭으로 간섭은 관습으로 아린자리에 상처를 내는 가까이 할수록 멀어진 거리 멀어질수록 더욱 멀어지는 거리
얼마만큼의 거리여야 할까 X자처럼 교차한 후 다시 멀어지는 길이 아닌 1.435미터 거리만큼 평행하다 소실점을 향해 두 길이 하나 되는 길 너와 닿지 않을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진정 아름답다는 오랜 생각의 바퀴를 굴려 구한 답, 허.기.진.다
콧날 시큰거리는 냉기가 플랫폼을 맴돌자 생각의 깊이를 가로지르는 싸락눈, 바람과 함께 문득 고요해지며 쓸쓸함은 바람 언저리에 서는데
자디잔 슬픔의 자갈 위 가로 받쳐 두 길 이어주는 침목 그 위에 기차의 맥이 철컹 철커덩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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