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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강 시인 / 시학
환하고 짠한 문장이 나타났구나 당신이 바라고 보채어 멀리서 날아왔구나 그림자여 짧은 그리움에 사뭇치며 사라지는지 알 수 없는 여백 비에 묻힌 그림자는 사소한 투정을 부리는가 어디에도 따라붙는 그림자 시로 붙들어 매고 하얀 눈 내리는 밤 그 속에 감추고 싶은데 지구에서 해가 지지않는 곳이 있다고 하지 그림자를 업고 아기를 재우듯 조용한 걸음 크고 길게 뻣어나가리 그림자 시여 겹쳐진 달 속에도 보여질까 헤어나올 수 없는 블랙홀도 그림자가 있는데 하얀 눈 쌓인 밤 당신의 그림자와 겹치고 싶은데
최희강 시인 / 키스의 잔액
눈을 떠보니 통기타는 날아가고 끊어진 스프링에서 마네킹은 목이 없고 뻐꾸기 한마리 날아드네 키스마크 꿈 사냥꾼이 쫓아 피를 토하는 꽃사슴 눈물방울 흐르네 키스 키스 스프링에서 나팔꽃은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게 피어나네
아침의 새가 지저귀는 비밀을 알수는 없을까 그 깊이에서 토끼도 뱀도 여름날의 풀밭을 기억 할까 좁은 길을 찾아 꿈을 찾는 오늘의 마른 눈
두 시간 전에 그곳에서 다른 키스를 하는 흥미로운 남자 내 거울에는 조심스러운 속도로 발걸음을 옮기며 그럴 수 있다고 나를 바라보았네 나의 사랑과 너의 사랑은 네 개의 바퀴
산의 허벅지를 뚫고 구름의 깊은 내장을 꺼내어 기쁨의 솜털로 잠을 청하며 안경을 벗어 너의 사랑 비명소리를 즐기네
또 사랑은 얼마든지 쏟아져 나올 것이고 개 한마리 어슬렁거리며 두 발로 지구가 흔들리고 전쟁이 난다해도 네 개의 발가락은 움직이네 세 시간 전에 그곳에서 키스하는 다른 네 개의 바퀴
거울들의 각도를 틀어 무서운 속도로 너를 잃어버리는 속도로 질주하네 다시 피어나는 나팔꽃
시집 『키스의 잔액』(실천, 2021) 중에서
최희강 시인 / 시생
산 그리고 물의 경계에 있음이여 촛대바위에 자리 한 평 내어줄 마음이 있는지 누구에게 물어야하나
반쪽이라도 내어주오 짧다고 말하지 마오 굴러가는 인생이라 신발이 닳고 도착한 곳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움직이고 터져 없어진 절규를 호명한다 울려퍼져라 아기의 첫울음
순간에 웃고 지금에서야 만나는 본연의 나 그림자에 묻고 싶은 말은 흰 눈에 희미해지고 마는
하늘에 물어보네 어떤날 좋아는지 사랑은 있었는지 가슴에 묻었더라
깜박 잠든 오후에 깨어나 마주한 하늘
강물에 떠내려가는 꽃잎 그제서야 계절이 시간 앞에 있음을 알겠네 하루를 살고 마지막 문장이면 어떠리
씨줄 날줄 쓸줄 알줄
시집 『키스의 잔액』(실천, 202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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