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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근 시인 / 어느 늦깎이 농부
숲 속에 있었을 때 벌판에 있었을 때 대지는 넓은 가슴으로 그를 품었다 한때 그는 도심의 오피스 데스크에 앉아있었다 비상과 추락 어긋난 약속들과 만남은 그를 어지럽게 했다 그는 귀농을 결정했다 대지는 그의 헛된 약속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땀과 시간은 농부와 동격 대지는 편견을 갖지 않는다 그가 대지가 될 때 고구마 넝쿨이 살쪄가고 바람이 될 때 빨간 고추가 된다 땀과 바람 비와 태양이 토지를 비옥하게 하고 부지런한 손놀림 발놀림 오랜 등 굽힘이 온전한 작품을 만들어 내는 대지의 시인이 된다 개미가 기어 다니고 나비가 날고 잎에 조금은 구멍이 뚫려있어야 고구마 넝쿨이 빨간 고추가 풋풋한 상추가 온전한 자연의 일부가 된다 비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는 콩이 되고 고구마가 되고 상추가 된다 가끔 허리를 펴고 하늘을 보며 즐거워하고 저녁노을 속에 귀가하면서 배고픔을 느낄 때 행복하다 늦깎이 농부는 인터넷 블로그를 만들어 새로운 농장에 그의 삶을 키우기 시작했다 거기에 심은 콩과 고추 고구마는 하나하나 詩가 되어 수확될 것이다 하루가 짧다 농부에게 온전함이란 자연을 손상치 않는 것 벌래 먹은 잎사귀도 찌그러진 고구마도 귀한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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