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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윤이 시인 / 아가씨들

by 파스칼바이런 2022. 5. 12.

김윤이 시인 / 아가씨들

 

 

편의점 매대에서 컵라면을 먹는

생면부지 여자들이었다

손해, 난민, 국가 내 불평등이 가져온 반목의 하나로

현지시각 24일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 결정이 실린 신문을 사며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는 우리나라

앞치마 두른 홍대 아가씨들 점심을 흘금거리며 보았다

지브롤터, 영유권 분쟁을 겪는 영국령 땅

스페인을 거쳐 갈 수 있는 곳이 이젠 가기 힘든 데가 되었다

세계의 신혼여행지, 하루 일만 명 노동자와 관광객이 몰리는 곳

대서양과 지중해 잇는 군사 요충지 해협 역사적 장소 트라팔가르 곶串

날마다 점심을 저 아가씨들처럼 후다닥 해치운

소화불량에 시달리는 여동생의 신혼여행지가

지면으로 하릴없이 펼쳐졌다

 

가을 무렵이면, 동생도 집을 떠나

이베리아 반도 남부에 있는 항구에 찾아갈 것이다

북쪽으로는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과 맞닿고

지중해 서안해양성 바람을 맞는 땅

남북으로 뻗은 바위산처럼 결혼의 단꿈이 솟고

차를 타고 정상에 서면 지중해와 아프리카가 한눈에 펼쳐지는 곳

장관을 보려는 수많은 관광객 중 나는 동생을 찾은 듯 웃었다

일의 힘겨움과 그래도 버텨야지 달래던 가족을 떠나

급선무인 업무와 출근을 잊고 가는, 거기

그러나 신문에서조차 젊은이들 꿈은 판독해낼 수 없었다

반대편 질러가도 여전히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공리주의, 세계화, 인적 자본,

민주주의, 자유, 평등을 외쳐야 하는 전지구

 

신문을 덮자 나는 갑자기 공허해졌다 ​

밀치고 가는 사람들 속에서 먼 동생에게 손 흔들듯이 허허로웠다

편의점 젊은 아가씨들도 어느 날엔가는

저소득 지역과 집값에 따른 지지도와 학력별 순소득율과

낮은 임금과 잠시 헤어질 기쁨으로, 이민자 국경 통제를 넘어

딴은 세대로부터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바이 바이, 사표 던지며 넘어갈 것인데

이 도시 수많은 편의점은 끼마다

천진무구한 사람을 어떻게 배불리고 있는지

잠깐 눈돌림에도 나는 어떤 절박을 읽은 듯 서서,

 

계간 『포지션』 2016년 가을호 발표

 

 


 

김윤이 시인

1976년 서울에서 출생. 200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트레이싱페이퍼〉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흑발 소녀의 누드 속에는』(창비, 2011),  『독한 연애』(문학동네, 2015), 『다시없을 말』(문학수첩, 2019)가 있음. 웹진 『시인광장』 편집장 역임. 현재 〈시힘〉동인으로 활동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