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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김영 시인 / 발신인 없는 소리들
누가 모래를 무겁다 했을까 흘러가 쌓였더라면 그건 가벼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소리의 체적(體積)이 사막이다
발신인 없는 소리들이 그물을 짜고 유영의 영토를 확장한다
흘러들어온 강물이 몸 숨기는 소리 도마뱀 제 그늘 옮기는 소리 가시덤불 건너는 구름의 소리 흰 뼈를 뜯는 시장한 바람의 소리 바싹 마른 꿈에 물오르는 소리 모래알들 간격 메우는 소리 속주머니에 목울음 구겨넣는 소리
돌아와야 할 숲은 어둠에 먹히고 보이지 않는 소리가 그물에 걸린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환상이 환상을 부러뜨린다
- 김제김영 수평에들다>(북메니저, 2020)
김제김영 시인 / 사물들의 본적
젖는 서사는 아무리 구겨도 날개를 펴지 않는다 발상은 본래 구겨진 것들 그러므로 구겨진 종이는 곰곰이 생각중이다
집어던질 일이 아니라면 저기, 떨기나무 덤불을 닮지 말아야 한다
종달새에게 바람은 선생이다 줏대가 없어서 상승과 하강을 동시에 가르친다
꽃을 이운 야생부추에게 창공의 높이란 무슨 소용인가 한때는 야생부추였으나 더 이상 정착을 도모하지 않는 종달새와 태양이 맹렬할수록 풀잎에게 갓을 내주는 모래 사막에는 수만 켤레의 신발이 있다지만 아무에게도 맞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종달새와 야생부추와 모래는 모두 본적이 같다 허공은 이력이란 선회(旋回)이거나 분분(紛紛) 모두 봉암된 생을 해체한다 소멸의 항적을 따라 창공과 바다를 복원한다 강물이 미끄러지며 잠시 번쩍인다
사물들이 달빛 아래 모인다
-김제김영 <수평에들다>(북메니저,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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