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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 시인 / 영웅
오늘도 나는 낡은 오토바이에 철가방을 싣고 무서운 속도로 짜장면을 배달하지 왼쪽으로 기운 것은 오토바이가 아니라 나의 생이야 기운 것이 아니라 내 생이 왼쪽을 딛고 가는 거야 몸이 기운 쪽이 내 중심이야 기울지 않으면 중심도 없어 나는 오토바이를 허공 속으로 몰고 들어가기도 해 길을 구부렸다 폈다 길을 풀어줬다 끌어당겼다 하기도 해 오토바이는 내 길의 자궁이야 길은 자궁에 연결되어 있는 탯줄이야 그러니 탯줄을 놓치는 순간은 절대 없어
내 배후인 철가방은 안팎이 똑같은 은색이야 나는 삼류도 못 되는 정치판 같은 트릭은 쓰지 않아 겉과 속이 같은 단무지와 양파와 춘장을 철가방에 넣고 나는 달려 불에 오그라든 자국이 그대로 보이는 플라스틱 그릇에 담은 짜장면을 랩으로 밀봉하고 달려 검은 짜장이 덮고 있는 흰 면발이 불어 터지지 않을 시간 안에 달려 오토바이가 기울어도 짜장면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것 그것이 내 생의 중력이야 아니 중력을 이탈한 내 생이야
표지판이 가리키는 곳은 모두 이곳이 아니야 이곳 너머야 이 시간 이후야 나는 표지판은 믿지 않아 달리는 속도의 시간은 지금 여기가 전부야 기우는 오토바이를 따라 길도 기울고 시간도 기울고 세상도 기울고 내 몸도 기울어 기울어진 내 몸만 믿는 나는 그래 절름발이야 삐딱한 내게 생이란 말은 너무 진지하지 내 한쪽 다리는 너무 길거나 너무 짧지 그래서 재미있지 삐딱해서 생이지 절름발이여서 간절하지 길이 없어 질주하지
달리는 오토바이에서 나도 가끔은 뒤를 돌아봐 착각은 하지 마 지나온 길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야 나도 이유 없이 비장해지고 싶을 때가 있어 생이 비장해 보이지 않는다면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온몸이 데는 생의 열망으로 타오르겠어 그러나 내가 비장해지는 그 순간 두 개의 닳고 닳은 오토바이 바퀴는 길에게 파도를 만들어주지 길의 뼈들은 일제히 솟구쳐오르지 길이 사라진 곳에서 나는 파도를 타고 삐딱한 내 생을 관통하지
이원,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 문학과지성사
이원 시인 / 작고 낮은 테이블
작고 낮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을 때는 바닥에 앉아 다리를 접고 등을 구부려야 하지요 이 작고 낮은 테이블에 무엇을 올릴 수 있을까요 우리는 마주 앉아 있는데요 저녁이 왔는데요
작고 낮은 테이블을 놓고 마주 앉을 때는 모퉁이가 되어야 하지요 쪼그리고 앉아 우리는 부리가 길어지지요
작고 낮은 테이블이 사이에 있어 우리는 손을 들어 비어 있는 둥그런 접시를 들어 올렸지요
네 개의 손이 하나의 접시를 잡을 때
어떤 기원을 부르기 위해서는 우리의 얼굴을 지나 허공의 입구까지 빈 접시를 들어 올려야 했나요 접시는 소용돌이를 언제 멈출 수 있을까요
볼로 접혀 들어가는 얼굴
깨져버렸어요 다리가 없는 사람이 되었어요 우리는 무릎이 있던 자리를 조금씩 조금씩 구부려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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