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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종무 시인 / 두물머리 연가戀歌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5. 16.

최종무 시인 / 두물머리 연가戀歌

- 진배 군 결혼식에 부침

 

 

잠깐만!

눈 감고 들어봐....

 

저기 강물 속

두 줄기 여로旅路 한 호흡으로 고르고 있으니

 

입술은 입술로,

가슴은 가슴으로 더 뜨거워져

두 뿌리 깊숙이 타 들어가 하나로

껴안고 어루만지는 투명한 어울림

 

몇 번이고 온몸이 저리도록 서로에게 녹아들고,

그리하여 황홀한 합체合體로 바르르 떨리는

두물의 입맞춤

절절하고도 애틋한 설레임으로 우리는

모든 껍질을 벗어버린 사랑을 꿈꾸는 것이니

 

들리지!

똑똑히... 강물 속

합쳐질수록 맑아지는 우리 시간 속에서

에로스의 맥박이 뜨겁게 뛰고 있으니

 

 


 

 

최종무 시인 / 삼패 삼거리*

 

 

저녁 햇빛을 쫓아가다 삼패리에 가면

아니 삼패 삼거리 서면

나는 늘 가위에 눌린다

 

신호등 앞에서 갈라진 길들은 어스름으로

시작도 끝도 지운다

미등을 켠 차들이 속도를 재촉하는 경적을 울리며

시작인지 끝인지 모를 곳으로 달려갔다

내가 가야할 저 끝에선

어떤 욕망들이 어둠을 부풀리고 있는 것일까

이정표가 어둑한 시간의 저 쪽을 가리키고 있다

 

흐릿한 등불이 내걸리는 삼패리에서

밤을 준비하는 걸음들이 분주하다

봉긋한 젖무덤 씻은 어린 기생은

오늘도 일패리로 가는 꿈에 흥건히 젖어

사향주머니를 매만질 것이다

가늘게 이어지는 교성을 좇아 간

왕자궁*에서 낯익은 남자를 보았다

낡은 군복 뒷주머니에 모자를 구겨 넣은 그는

 

연병장을 엉거주춤 걸어 나오고 있었다

아주 오래된 이데올로기 하나를 거세하고

훈련을 빠지게 됐다며 아랫도리를 움츠렸다

환관들 기와집이 들어찼었다던 논바닥에서

찢어진 비닐자락이 펄럭거리고 있었다

 

일패리로 가는 지름길이 뚫렸다는데

나는 오늘도 삼패 삼거리에서

파란 신호를 놓치고 멈춰 선 채

어둑한 뒤만 돌아다 본다

 

*삼패 : 조선 시대 궁궐 기생의 등급 가운데 세 번째 등급.

*왕자궁 : 조선 시대 내시들이 모여 살았다는 곳을 스스로 왕자궁이라 불렀다고 함

 

 


 

최종무 시인

강원대학교 국어교육과 대학원 졸업. 2005년 제9회 ≪농민신문≫ 신춘문예에 <오래된 집은 달밤에 알을 품는다>로 시부문 당선. 시집으로 『아부지』(월간문학, 2016)이 있음. 용문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