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길성 시인 / 성님성님하면서 눈이 내릴 때
입춘 추위가 매섭던 새벽 차비도 없이 눈 속에 갇혀버린 광명하고도 사거리에서 헤메다 찾은 조모 시인의 고시원성님 시원한 물 쪼까 드셔 이방 저 방 다니며 담배도 얻어 와서 성님 담배 잠 피워 보드라고잉 앗따 차비라도 구해얄 텡게 또 이방으로 저 방으로 돌아친다 성님 전철비가 천 오 백 원잉께 버스비가 팔백 오십 원 이제 이천 사백 원이면 갈 수 있제 성님 꼬깃 꼬깃한 천 원짜리 한 장에 백동전을 하나하나 세어가며 손에 쥐어준다 성님 참말로 미안하요 라면이라도 한 봉지 끼려 드려야는디 주머니 먼지밖에 가진 게 없어라 맨발로 따라나서며 우린 입춘의 눈발을 맞는다 성님 봄 되면 나가야지라 일거리도 많을테고라 방도 얻어야지라 성님 도다리 좋은 놈 잡아 회도 쳐 묵고 찌게도 끼려 감서리 소주도 한잔 찌끄리고잉새봄엔 광명한 햇살이 내리실라나 광명사거리에 눈 내린다성님성님하면서
시집『나는 보리밭으로 갈 것이다』(b, 2017) 중에서
조길성 시인 / 우물
방안에 우물이 있는데 일 년 사시사철 수온에 변함이 없다 물맛도 좋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다 가물어도 마르지 않고 장마철에도 물이 불어나지 않아 꼭 그만큼이다
가끔 잠 못 드는 새벽이면 우물을 가로지르는 현명한 달빛을 오래도록 바라보곤 한다
그럴 때면 어떤 말씀들이 소리 없이 달빛의 씨방 속에서 터져 나오곤 한다
2020 경기문화재단, 창작 지원 선정작가 작품집 『경기문학』수록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준관 시인 / 구부러진 길 외 2편 (0) | 2022.05.17 |
---|---|
이현서 시인 / 슬픈 유작遺作 외 3편 (0) | 2022.05.17 |
김밝은 시인 / 소설 즈음 외 2편 (0) | 2022.05.16 |
이시하 시인 / 나무 외 5편 (0) | 2022.05.16 |
김후영 시인 / 봄은 손수레를 타고 외 1편 (0) | 2022.05.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