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조길성 시인 / 성님성님하면서 눈이 내릴 때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5. 17.

조길성 시인 / 성님성님하면서 눈이 내릴 때

 

 

입춘 추위가 매섭던 새벽 차비도 없이 눈 속에 갇혀버린 광명하고도 사거리에서 헤메다 찾은 조모 시인의 고시원성님 시원한 물 쪼까 드셔 이방 저 방 다니며 담배도 얻어 와서 성님 담배 잠 피워 보드라고잉 앗따 차비라도 구해얄 텡게 또 이방으로 저 방으로 돌아친다 성님 전철비가 천 오 백 원잉께 버스비가 팔백 오십 원 이제 이천 사백 원이면 갈 수 있제 성님 꼬깃 꼬깃한 천 원짜리 한 장에 백동전을 하나하나 세어가며 손에 쥐어준다 성님 참말로 미안하요 라면이라도 한 봉지 끼려 드려야는디 주머니 먼지밖에 가진 게 없어라 맨발로 따라나서며 우린 입춘의 눈발을 맞는다 성님 봄 되면 나가야지라 일거리도 많을테고라 방도 얻어야지라 성님 도다리 좋은 놈 잡아 회도 쳐 묵고 찌게도 끼려 감서리 소주도 한잔 찌끄리고잉새봄엔 광명한 햇살이 내리실라나 광명사거리에 눈 내린다성님성님하면서

 

시집『나는 보리밭으로 갈 것이다』(b, 2017) 중에서

 

 


 

 

조길성 시인 / 우물

 

 

방안에 우물이 있는데

일 년 사시사철 수온에 변함이 없다

물맛도 좋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다

가물어도 마르지 않고

장마철에도 물이 불어나지 않아

꼭 그만큼이다

 

가끔 잠 못 드는 새벽이면

우물을 가로지르는 현명한 달빛을

오래도록 바라보곤 한다

 

그럴 때면

어떤 말씀들이

소리 없이 달빛의 씨방 속에서 터져 나오곤 한다

 

2020 경기문화재단, 창작 지원 선정작가 작품집 『경기문학』수록

 

 


 

조길성 시인

2008년 《창작21》로 등단. 시집으로 『징검다리 건너』(문학의전당, 2011)와 『나는 보리밭으로 갈 것이다』(b, 2017)가 있음. 현재 한국작가회의, 창작21작가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