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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조원 시인 / 꽃의 입관식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6. 9.

조원 시인 / 꽃의 입관식

 

 

반드시,

시신만 전문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눕지 못하고 서서 죽은 꽃

편히 안치할 수 있도록 먼저 바람을 부르십시오

시중에 떠도는 잡배 바람은 밀치기부터 하지만

넘어질 때마다 일으켜 주는 바람도 있습니다

쓰러지지 않고 흔들린 이유가 거기 있지요

죽어서도 온전히 눕지 못한 목숨을

줄기부터 받침까지 바스러지지 않게 다뤄 주십시오

백년 된 오동나무 관에 입관하기 전

강물에 버들잎을 씻어 양손으로 꾸욱 짠 뒤

씨방이 헐거워 밑씨 빠진 암술부터

버짐 핀 꽃밥까지 고요히 닦여야 합니다

벌의 눈물과 나비의 애도를 촉촉이 담아

퍼석한 암술에 적셔 드리면 됩니다

억새 손길은 망자라도 아픈 법이니

핏덩이 다루듯 살살 문질러 주십시오

저기, 염을 위해 한 떼의 구름이 몰려오는군요

천 번을 탄 목화여야 부패를 막을 수 있습니다

환생할 수 있도록 뿌리마다 온기를 주세요.

조문객과 상주는 슬퍼하지 않아도 좋으니

강물 같은 곡소리만 자글자글 들려주십시오

나무들이 줄지어 가지를 흔들고 있군요

 

자, 이제 애도의 리본을 달고

장지로 출발합니다

 

 


 

 

조원 시인 / 태양은 노른자가 되고 싶다

 

 

과학적으로 말하자면

당신이 내 주위를 맴도는 것으로 기록됐지만

아니다. 밤마다 검은 불로 살라 먹은 수 억 만개 별들로

육천 도가 넘는 에너지를 뿌리며

내가 당신 주변을 맴도는 것이다

 

굴뚝을 빠져나오는 연기처럼

구멍을 열어 좌욕하는 여인처럼

당신의 바다에 열전도가 일어난다

 

지구의 노른자가 되고 싶어

나는 정오마다 이글거리는 태양

푸르다는 것이 얼마나 뜨거워야 하는지

일억 오천만 킬로미터를 쏜살같이 달려와

보여주겠다. 뙤약볕에 눈알이 찔리는 바다

 

눈부처가 타고 있다. 활활

꼬리뼈를 들썩이며 북극 고래는 열기를 피해 달아나고

부글부글 끓어 내 심장으로 기화하는 파도에게

포로를 맞이하듯 발기된 빛을 푼다

 

하지만 양극을 모두 말려버리기엔

당신은 지구라는 이름으로 너무 오래 살았다

일광욕을 즐기는 알래스카불곰처럼

살결 그을리다 표표히 사라지는 바람처럼

북극의 열전도는 가슴만 시리다

 

나는 당신을 불화살로 뚫으려 하고

당신은 처녀림처럼 푸른 방패를 세운다

우리의 합궁이 멀다

 

 


 

조원 시인

1968년 경남 창녕 출생. 동의대학교 미술학과 졸업. 2009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슬픈 레미콘』(푸른사상, 2016)이 있음. 현재 <잡어>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