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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휘민 시인 / 신분당선

by 파스칼바이런 2022. 6. 10.

휘민 시인 / 신분당선

 

 

급행열차를 탄다

기관사가 없어도 문이 열리고 닫힌다

맨 앞 칸으로 가면

어둠 속을 질주하는 불빛을 볼 수 있다

 

내시경 카메라가 식도를 훑고 지나가는 것 같다

 

객실 안은 마스크 쓴 사람들로 가득하다

새로운 풍경이다

 

어떤 단어에 신이 붙는 것은

새롭다는 뜻일까 다르다는 뜻일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운 좋게 몇 개의 역을 지나쳤지만

미래는 가까워지지 않는다

 

내가 비건이 되면 세상에 단 두 마리 뿐인

북부흰 코뿔소가 멸종하지 않을까

 

그러나 나는 늦게 도착하는 사람

걱정하는 마음이 생기고 나면

이미 그것은 사라지고 없었다

 

누군가 기침을 한다

마스크들이 일제히 그를 바라본다

이 장면에도 신이 존재할까

신동탄까지 내려 갔지만

그곳은 동탄이 아니었다

 

믿음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환승역이 보이지 않는다

미래는 이미 지나갔는지 모른다

 

지금 이 순간

마스크는 불안의 안쪽일까 바깥쪽일까

 

《시인 동네 2020. 3월호

 

 


 

휘민 시인 (본명 박옥순)

1974년 충북 청원에서 태어나 청주과학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200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201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 당선. 시집으로 『생일 꽃바구니』, 『온전히 나일 수도 당신일 수도』가 있고, 동화집 『할머니는 축구선수』와 그림책 『빨간 모자의 숲』을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