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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강문숙 시인 / 이팝나무 아래로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6. 10.

강문숙 시인 / 이팝나무 아래로

 

 

밥 먹으러, 아부지 우리 같이 가요

초록색 선명한 줄무늬 넥타이 매고

머릿기름 발라 올백으로 넘기고

이팝나무 아래로 저랑 같이 가요

 

백발이면 어때요

걸어온 길 자꾸 희미해지면 어때요

청춘을 건너오지 않은 백발

겨울 뚫고 오지 않은 봄나무 어디 있나요

 

얼마나 배고팠으면, 이팝나무

제 이름 서러운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퍼담기만 하는 저 하얀 밥송이

자꾸 흘리는 아이 머리통 쥐어박으며

저만치 봄날은 가네요

 

울다가 숟가락 놓치더라도

놓친 숟가락 다시 잡더라도

어둠이 내려 길마저 놓치기 전에

아부지, 우리 밥 먹으러 같이 가요

 

 


 

 

강문숙 시인 / 가을 戀歌

 

 

가을이 오면

빈 들판 같은 가슴으로

그대에게 가리라

충만한 시간 속의 열매는

홀연히 문밖을 나서는

聖者의 얼굴

고요한 눈빛 속으로

저녁 강이 흐른다

 

이마 푸른 바람으로 오는

그대여, 독화살을 쏘아다오

지금 울지 않으면

저 바람도 끝내

산을 넘지 못하리

 

 


 

강문숙 시인

1955년 경북 안동에서 출생. 199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과 1993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잠그는 것들의 방향은?』(세계사, 1995)과 『탁자 위의 사막』(문학세계사, 2004), 『보고 싶다』 등이 있음. 대구 문학상, 대구시인협회상 등 수상. 현재 <시. 열림>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