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진 시인 / 사루비아 터널
사루비아 꽃을 따서 꿀을 빨아 먹는다 정적소리 가득한 아득함을 빨아 먹는다 아득해서 다다를 수 없는 길이 입안으로 들어온다
언젠가 사루비아의 손엔 붉은 신발이 들려 있었고 기나긴 기다림과 짤은 설렘을 양쪽 주머니에 찔러 넣고 터널을 걸었다
오랜 기침과 거친 가래를 삼키며 줄기마다 상한 꿀을 저장한 빨간 꽃치마 철길 위에 서 있던 사루비아 아득한 11번가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기차는 경적을 울리지 않았다 경적을 마주하고 있는 것은 터널 속에 홀로 선 사루비아
피었던 사루비아가 다시 피었다 내가 잃어버린 것만 빼고
박소진 시인 / 기상
다시 오지 않을 불안의 맥을 잡는다 튀어 오를 가쁜 숨 심장으로부터 오는 소리 발 끝으로 시린 피가 전해진다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불안의 심연에서 푸른 꽃잎이 피어났다
우리들의 잔상 모든 잊혀져 가는 것을 위한 호소 누구도 부르지 않아 이름 없는 생명 경계에서 조용히 죽어가는 고독 다시 일으켜 불렀다
다그쳐 사는 젊음에 시간을 잊는 날 기억 없는 일상 사랑을 지운 사랑 거기에 이름 붙이네 태어난 지도 모르게 잊혀져 가는 존재에
고독이 아파 그대를 꾹 움켜쥐었다 부족하지 않게 쓰다듬고 마음이 지어준 낱말로 부른다 다시 일어나 그대, 그대를 살거라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기범 시인 / 땅속의 방 (0) | 2022.07.25 |
---|---|
이경호 시인(서산) / 웅덩이 외 5편 (0) | 2022.07.25 |
손미 시인 / 누구도 열 수 없는 병 속에서 외 4편 (0) | 2022.07.24 |
문정 시인 / 반려 외 5편 (0) | 2022.07.24 |
박숙이 시인 / 무 외 1편 (0) | 2022.07.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