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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황려시 시인 / 수작, 짐작, 참작 외 5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7. 25.

황려시 시인 / 수작, 짐작, 참작

 

 

케잌을 샀다

생크림이 유익하지 ‘점도야, 잘 울어보자’

양초만 울었다 울적하면 달달한 것과

수작酬酌한다

 

식탁엔 금국이 피고 샛강이 흐르고

걸터앉는 습관으로 나는 풍경이 된다

손톱을 깎으며 붉은 낙타에게 가고 싶어. 모래의

약도를 짐작斟酌 하고 밤은 날마다 범이 된다

 

케잌을 수저로 떠먹는 사람들이 모인다 승우형도 왔다

그 형을 볼 때마다 잘 박힌 못이 생각난다 형은 울기 전에

살짝 웃는데 사막 같았다

 

인심쓰는 척 "참작參酌할께" 승우형이 말했다

케잌을 담고 크림 뭍은 수저를 긁으면 사락

사락 귀 없는 접시가 웃다가 다시 멍

때리고 있다 할 말께나 많은 것들은 웃고

 

 


 

 

제 12회 <시와세계> 작품상

황려시 시인 / 감염

 

 

질감이 다른 것끼리는 고쳐 써야한다

타일을 붙인다 하얗게 굳어지는 벽

타일러의 어깨와 근육의 비율은

 

입이 생기는 아침 저들끼리 연결 된다

하얀 마스크가 전철 안 다른 마스크와

벽이 되고 벽은 환해지고 벽을 따라

 

발빠짐 주의, 잘 빠짐 주의

 

방에서 울고 있는 꾸덕한 벽에 혼자의

마스크를 붙이고

경계 없는 경계를 기다린다

 

'도대체 언제까지야'

 

벽에 기댄 하양은 흘러내리고 유배되고

땀을 닦는 타일공에게

 

고마웠습니다 이렇게 울부짖음도 있다

 

 


 

 

황려시 시인 / 나의 수베로사

 

 

블라인드를 내렸다 네가 잠들까 봐

나 잠든 사이 네가 깰까 봐 갸웃 까치발이다

발 있는 꽃, 없어도 되는 꽃이 “언니 포트 좀 내려줘"

세상에서 제일 작은 시계초다

 

손이 작아 조금밖에 줄 수 없는 널

엄지공주라 불렀다

운다, 운다. 운다 하면 울어버리는 뜨개질 선수

 

굽 높이를 싫어했지 손이 닿지 않아도

바닥을 견디는 힘이었구나

 

언니, 나 왔어

창틀까지도 네 머리띠는 보이지 않아 고개를 내밀면

실눈이 웃는, 울리지 않으면 늘 웃는

 

거기 시계초가 피었다

 

 


 

 

황려시 시인 / 탐험하다

 

 

벽에 등을 맡긴다 벽을 믿는다 두터울수록 각주가 누설되지 않는 어둠과 내통하는 빛 을 단애라고 읽는다 모서리는 시작일 뿐 (수작으로 긋는 점이다) 나이 스물은 넘었겠지? 변성기가 온 내게 벽화 속 염소가 물었다 보이니? 점이 멈추다 숨이 시작되는 곳 벽의 낱장을 들춘 내가 웃긴다고 했다 손가락으로 두께를 가늠하는 한숨,  두숨, 세 숨결마다 단층은 무너지기 좋았다

 

짚이는 게 있어 무게에 눌린 단단한 책갈피, 열세 살 나비의 화석이 살고 있었다 서재의 벽에도 서재에도

 

 


 

 

황려시 시인 / 철원

 

 

철원이라고 했다 도로명이 뭐였더라?

 

철공소가 망하자 커피숍을 차렸다

커피철공소가 어디냐 물으니

이차선 도로변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지

 

소리끼리 다투던 곳, 쇠톱 소리가 사람의

말을 밀어내고 아메리카노는 좋았다

녹물 닮은 커피는 녹슬지 않았다

 

공기 청정기를 선물로 샀는데

(크기가 작아)

계산대에 무게도 달지 않고 커피만 달았다

 

“철원에 오길 잘했니?"

 

차돌 같은 그가 신발 앞부리로 툭툭 의자 를 찼다

그래, 돌도 가끔은 감기를 앓지

 

쇳가루가 떨어졌다 나는

티슈 대신 그에게 마스크를 씌워 주었다

작은 도시일수록 입을 조심하라고 일러두었다

 

 


 

 

황려시 시인 / 어쩌다 모자

 

 

썼어요? 가면이 필요해요

눈을 감으면

눈을 감고 기도하던 엄마가 생각나요 어두움은

 

말이 잘 통했어요

 

수선화가 피었네요 모자를 써요

 

아버지의 아버지는 지팡이가 어울렸죠 벗겨진

모자는 외발로 걷다가

호수를 덮어요 위태로운 문장이 고이지 못하게

 

우리를 호명해요

 

“나르키소스, 안돼” 라고요

 

공원에 갔어요 비둘기들이 덤벼요 우리는

모자가 없거든요 그럴 땐 눈을 감고 생각해요

이제부터 이야기가 많아지겠구나!

 

얼굴의 반이 모자라서

누가 내 얘기만 해요 모아놓은 듯 스며들어요

 

 


 

황려시 시인

2015년 《시와 세계》를 통해 등단. (본명 황영자), 시집 으로 『사랑 참 몹쓸 짓이야』, 『머랭』, 디카시 『 여백의 시』가 있음. 약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