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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변영희 시인 / 아무 생각없는 생각을 했다*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7. 27.

변영희 시인 / 아무 생각없는 생각을 했다*

-김지요

 

 

실비아 플라스를 읽다가

김지요를 읽는 저물녘

뜨겁지 않은데 뜨거운

차갑지 않은데 차가운

 

노을을 해체하는 흰 물감처럼

서서히 흩어지는 저물녘

 

체온이 낮습니다라는 기계의 말이

정상입니다로 바뀐 봄날

 

다르지 않다와 다르다 사이를 오가다

 

아주 체온을 잃을 거라는 거

저물녘에 들어서 안다

풀 뜯는 소를 바라보는 일처럼

어디에 있어도

 

조금 아파도

괜찮다

 

작은 손을 깍지 끼고

뒤란에 선 김지요 그리고 시인들

 

오래 키득거리자

 

다래끼 앓는 눈처럼 붉어져도

나날이 더욱 붉어져서

 

* 김지요 시, 「저물녘」의 한 행

 

-2021. <시와 사람>. 여름

 

 


 

 

변영희 시인 / 다 괜찮아

 

 

 싸리꽃이 피고 고사리가 엉키고 잡종의 식물이 기어 다니는 당신 집은 참 멋져 내가 우려 간 차 맛은 어때? 블렌딩해서 별로라고?

 

 허세 웃기시네

 

 눈을 찌르거나 코를 후비거나 귀를 잘라내는 것 아니면 다 괜찮아 조각보 햇살 끌어안고 새소리 샤워나 하시지 고사리를 뽑다 만져봤어 혹 당신 새끼손가락에 닿았을까 팔꿈치에 닿았을까 상상했지 따뜻해질 때까지

 

 삼나무들이 팔을 흔드네

 

 그림자를 깔고 앉아 당신을 만졌어 눈꺼풀을 쓸어내리며 어깨를 들썩이며 고사리 때문이야 곱슬한 머리카락이 파도 같잖아 심어둔 카네이션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싸리꽃이랑 나만 고요히 흔들리는 산기슭

 

 어느새 차가 식었네

 

 따뜻하게 지내 혼자 있진 말고

 

 2021. <포지션>. 가을호

 

 


 

변영희 시인

전남 장성에서 출생. 동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수학. 방송대학교 문화교양학과 졸업. 2010년《시에》로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 시집으로『y의 진술』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