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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신미나 시인 / 복숭아가 있는 정물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7. 27.

신미나 시인 / 복숭아가 있는 정물

 

 

그대라는 자연 앞에서

내 사랑은 단순해요

 

금강에서 비원까지

차례로 수국이 켜지던 날도

 

홍수를 타고

불이 떠내려가는 여름

신 없는 신앙을 모시듯이

 

내 사랑에는 파국이 없으니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

 

과육을 파먹다

그 안에서 죽은 애벌레처럼

순진한 포만으로

 

돌이킬 수 없으니

계속 사랑일 수밖에요

 

죽어가며 슬은 알

끝으로부터

시작으로 들어갑니다

 

 


 

 

신미나 시인 / 개화기開化期

 

 

옛날 옷을 입고 옛날 사람처럼 성에 갔지요

 

귀문을 지키는 돌은 사람의 얼굴을 닮은 돌

귀도 없고 코도 없이 문드러진 돌

 

어쩐지 오늘 같은 과거의 어느 날에

한번은 이곳에 온 것만 같아서

 

붉게 붉게 달려가다 일제히 핏기 가신 꽃

무서워, 무서워 몸이 떨려오는데

 

앞서가는 사람은 위만 보고 걷습니다

물집 터진 뒤꿈치에 피가 밴 줄도 모르고

 

사쿠라가 유라유라

사쿠라가 치라치라

화첩 속에서

검은 이를 드러내며 사람이 웃습니다

 

사쿠라가 유라유라

사쿠라가 치라치라

제 머리로 종을 치며 까마귀가 웁니다

 

 


 

신미나 시인

1978년 충남 청양에서 출생, 강릉원주대학교 졸업. 강릉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졸업. 200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부레옥잠'으로 시부문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싱고’라는 이름의 웹툰작가로도 활동. 시집 『싱고,라고 불렀다』, 시툰 『詩누이』 『안녕, 해태』